유럽발 경제위기, 세계경제 덮치나
① 재정위기냐 유로 위기냐
② 긴축이 재정문제 해법이라고?
③ 엇갈리는 유로존의 운명
④ 한국 경제와 한·미 FTA, 어떤 영향 받나?

ⓒAP Photo
유럽발 경제위기가 세계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사IN〉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과 함께 유럽발 경제위기의 구조 및 해법을 점검하는 시리즈를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지난 호에는 시리즈의 첫 회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그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존의 근본 문제라는 요지의 글을 실었다. 이번 호에는 유럽연합과 IMF 등이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긴축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신자유주의의 부활’인 긴축정책은 재정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국가가 돈을 안 쓰면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고, 국민들만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 합리적인 해법은 유럽중앙은행이 적극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유럽 정상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 세계경제 전망이 어둡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들의 성장률이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유로 지역의 경우 1.6%에서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마저도 “유로 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 붕괴, 체계적 은행 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 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했다. 세계경제 이상으로 유럽 재정위기 해결 전망이 어둡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재정위기의 척도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재정적자, 금리 그리고 성장률에 주로 의존한다. 따라서 정부가 균형재정을 유지하더라도 금리가 성장률을 상회하면 이 비율은 증가하게 된다. 현재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7%를 넘는데, 성장률이 마이너스이면 부채 비율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의 경우 지난해에 트로이카(EU, ECB,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2014년까지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2008년 118%에서 내년에 181%를 넘으리라 전망된다. 왜 그런가? 재정위기에 대한 트로이카의 처방, 즉 긴축정책이 매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 대세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재정지출 축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전체와 미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한국의 경우 그리스 재정위기가 방만한 복지 지출 탓이라면서 이를 교훈 삼아 정부도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고 재정 균형을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긴축이 재정위기의 해법이자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적절한 처방일까.

그렇다면 긴축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분기점은 언제일까.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 계획을 약속한다”라고 선언했던 2010년 6월 G20 토론토 정상회의라 할 수 있다.

ⓒAP Photo11월17일 아테네 주재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벌어진 시위.

왜 이렇게 경제정책의 기조가 180도 바뀐 것일까? 당시 경기 부양에서 재정긴축으로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경제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먼저 성장률이 예상보다 너무 좋을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빨랐다.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 즈음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은 1.9%였으나 그해 9월에는 2.6%로 상승했고, 토론토 정상회의가 열리던 지난해 6월에는 3.5%까지 증가했다. 일시적인 경기회복 분위기에 편승해 안이하게 정책 기조를 틀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토론토 G20 회의 직전인 2010년 3월부터 그리스와 남유럽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우파 정부 집권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재정위기 논란이 정치적으로 국제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국가 재정위기’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위대한 반전’이다. 그러나 그릇된 정치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유럽 재정위기, 세계적인 성장률 하락, 그리고 실업률 상승이 바로 그 징표들이다.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경제학에 능통하지 않은 일반인은 자신의 개인 상황을 사회 또는 경제 전체의 상황으로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계의 적자가 지속되면 빚이 늘어나고 원리금 상환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파산에 빠지게 된다.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언론은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를 가계의 예산 문제에 빗대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라고 강변한다. 언뜻 그럴싸한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 오류가 숨겨져 있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말하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케인스가 ‘일반 이론’에서 지적했듯이 “총량으로서 경제적 행위에 대한 이론과 개별 단위의 행동에 대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케인스는 ‘저축의 역설’을 통해 합성의 오류를 설명한다. 한 개인은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빵집에서 매일 빵을 아침으로 먹는 길동이가 일주일에 한 번은 빵을 사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자. 물론 배고픔을 대가로 그의 저축액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이 행동하면 총저축은 늘어날까? 빵 판매가 줄어들면 점원을 줄이고, 밀가루·고기·채소 따위 주문도 줄어 고용이 줄어든다. 일자리를 잃은 점원은 소득이 줄어들어 오히려 저축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 사례에 담긴 함의는 개인의 저축 행위가 타인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정부는 개인과 달리 총수요의 한 부문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경제주체다. 특히 남유럽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정부 지출은 GDP의 40%를 초과한다. 경제는 크게 가계와 기업을 포함한 민간·정부·해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 전체적으로 이 세 부문의 지출의 합은 소득의 합과 반드시 같아야 한다. 물론 어떤 한 부문만을 놓고 보면, 소득보다 덜 지출해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부문이 흑자를 이루면 다른 부문은 반드시 적자가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 부문이 균형(경상수지 균형)이라면, 민간 부문이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부문이 적자 지출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해외 부문 수요 부족(GDP 10% 수준의 경상수지 적자) 상황을 정부가 10% 적자재정 지출로 메우는 중이고, 민간 부문은 거의 균형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경상수지가 10% 적자 수준으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긴축’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게 민간 부문이 7% 수준으로 적자를 내서 지출을 늘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출이 축소된 만큼 국민소득이 줄어들고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치듯 재정적자 축소가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다른 부문에서 지출 확대가 수반되어야 한다. 민간 부문이 더 지출하거나 해외에서 남유럽의 재화를 더 구입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는 트로이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탕한 너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칠 뿐이다. 이는 도덕일지언정 경제정책이 아니다.

ⓒAP Photo2010년 6월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이 회의를 계기로 세계 경제정책이 긴축으로 바뀌었다.

물론 1990년대 스웨덴이나 캐나다의 경우 긴축재정을 통해 재정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이들 국가는 금리나 환율 조정을 통해 내수와 수출 증대를 달성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세계경제는 미국 신경제를 필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로화에 가입한 남유럽 국가들은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낮출 수도, 명목 환율의 조정을 통해 수출을 늘릴 수도 없다(〈시사IN〉 제220호 ‘유럽발 경제위기①’ 기사 참조). 개별 국가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임금을 깎아 가격을 떨어뜨리는 내부 평가절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핍’은 남유럽 국민의 엄청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실업률이 좋은 예다. 2008년 실업률 7.7%에서 긴축정책을 실시한 이후 이 나라 실업률은 두 배 넘게 상승해 16.6%를 기록하고 있다.

가혹한 내핍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유럽 국가의 물가상승률을 독일보다 낮춰야 한다.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현재 1.5% 수준인데, 남유럽 국가는 이보다 더 낮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내핍을 강요하는 것으로 디플레이션에 따라 오히려 부채의 실질 가치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가능한 해법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남유럽 상황에 맞게 현재 2% 수준인 목표 물가를 상향 조정하고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제로금리 정책을 취하는데,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기준금리가 1.25%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최종 대부자’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일본·영국의 중앙은행이 실시했던 양적완화 정책은 바로 유럽중앙은행에 필요하다. 남유럽 국채 발행의 차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무제한적인’ 국채 매입 계획을 발표해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중심국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가 예상을 넘어 확산된 데에는 유럽 채권의 디폴트에 베팅하는 투기 세력이 개입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과 헤지펀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토빈세 도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아울러 개별 국가의 긴축에 따른 ‘지출 갭’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로화의 최대 수혜국인 독일과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적극적인 내수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경기 침체는 재정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이는 또다시 긴축을 강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모든 노력에는 유럽 정상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럽 위기를 해결할 열쇠를 쥔 독일은 2016년까지 재정 균형을 달성해 유럽의 본보기가 되려는 야심찬 ‘긴축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12월 초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회의와 유럽 정상회의에서 유로 금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정책에 전환이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이것이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는 유로 붕괴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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