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반년 넘게 지난 지금, 한국의 원전 확대 정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정부의 원전 확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월 이 대통령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고가 났다고 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기술 면에서 후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22일 유엔 원자력 안전 고위급 회담에서는 기조연설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자력을 포기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재 원자력의 활용은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뉴시스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7월9일 부산 기장군 월내항에서 ‘STOP GORI’라는 글귀를 펼치며 원전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원전이 불가피한 이유는 뭘까? 가장 유력한 근거는 바로 ‘경제성’이다. 원자력으로 인한 발전이 태양열·풍력 등 대체 에너지로 인한 발전은 물론 화력·수력 발전보다 훨씬 값이 싸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이 밝힌 2009년 발전원별 거래 단가를 보면, 원자력이 35.64원/㎾h으로 석탄 60.31원/㎾h, LNG 153.06원/㎾h, 수력 109.37원/㎾h에 비해 단가가 낮다.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작성한 〈원자력 경제성 분석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을 통해 1986년에서 2003년까지 연간 4조원 이상의 전력 생산 비용과 환경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절대적 진실은 아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탄소 감축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보고서 〈원자력 발전의 미래(The Future of Nuclear Power)〉를 보자. 결론과는 별도로, 이 보고서는 원자력 발전(6.7센트/㎾h)이 석탄(4.3센트/㎾h)이나 가스 복합발전(4.1센트/㎾h)에 비해 오히려 비싸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이 보고서가 꼽은 원자력 발전의 첫 번째 극복 과제는 ‘안전성’이 아닌 ‘비용’이다. 일본에서도 원전의 발전 단가가 결코 싸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일본 신임 총리, 원전사랑 재가동 기사 참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한전에서 거래 단가 수치만 밝힐 뿐 어떤 방식으로 산정했는지 제대로 밝힌 적이 없어 그 가격이 적절한지 한 번도 검증된 바가 없다. 또 원자력 발전 가격에는 순수 발전비용뿐만 아니라 폐로(廢爐)에 드는 비용, 핵연료 사후처리비, 지역 주민 갈등 비용, 원자력문화재단에 주는 특혜성 홍보비 등이 모두 반영돼야 하는데 이런 비용들이 누락되었거나 원가 이하로 잡혔을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다. 


ⓒAP Photo이명박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 단가에 ‘숨은 비용’

경원대 에너지IT학과 김창섭 교수도 “원자력 발전은 다른 발전에 비해 ‘히든 코스트(hidden cost)’가 많다”라고 말했다. 어디까지 원가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가격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원자력 에너지 발전 원가를 산정한 2004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의 〈원자력 발전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 분석사업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원전의 ‘히든 코스트’는 누락된 채 건설비·연료비·운전유지비 정도만 반영한 가격을 기준으로 유연탄·LNG 복합발전보다 원전의 경제성이 우수하다고 분석해놓았다.

특히 최근 원전의 건설비 증가는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2009년 한차례 업데이트된 MIT 〈원자력 발전의 미래〉 보고서에서는 원자력의 발전 단가가 8.4센트/㎾h로 2003년의 6.7센트/㎾h보다 더 올랐는데, 보고서는 그 이유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원전 건설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그리니치 대학의 스티브 토머스 교수도 2010년 〈원자력의 경제성(The Economics of Nuclear Power)〉이라는 논문을 통해 각국의 원전 건설 현황과 공사 금액을 분석하며 “원전의 건설비가 실제 공사에 들어간 후 애초 계약 금액보다 급증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국가적 보장과 지원금이 있는 경우에만 원전을 짓는다”라고 밝혔다.

설사 비싼 건설비를 충분히 반영해도 싼 연료비와 높은 가동률 덕분에 원자력 발전의 원가가 낮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으로도 원전의 진짜 경제성을 확신하기는 힘들다. 다른 발전 형태와 달리 원전은 가동 기간이 한정돼 있을뿐더러 그 수명이 다하면 단순히 출입문을 폐쇄하는 것 이상의 ‘폐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류에 따르면 원자로의 해체 방식은 △즉시 해체(Immediate Dismantling) △지연 해체(Deferred Dis-mantling or Safe Storage) △영구 밀봉(Entombment)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피폭 위험성이 가장 큰 즉시 해체 방식만 하더라도 최소 15년 이상이 걸린다. 


 

시간도 그렇지만 폐로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폐로 1순위’인 원전은 1977년 최초로 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 설계 수명 30년으로 2007년에 수명이 다했지만 정부는 ‘10년 연장 가동’을 결정했다. 2017년, 앞으로 6년 뒤에는 다시 폐로 시점이 돌아온다. 이 고리1호기를 폐로한다고 가정한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환경운동연합과 민주당 강창일 의원실이 최근 작성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로 비용 추산 및 준비 정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2211억원, 최대 9861억원이 든다(위 표 참조).

먼저 최소 비용은 2005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작성한 〈원전 폐로 정책 및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사전 연구〉에 따른 것이다. 이 보고서가 추산한 고리1호기의 폐로 비용은 약 1억8800만 달러(약 2211억원). 원전 해체 비용 충당금 산정 기준을 정한 지식경제부 고시 제2008-227호에서는 철거비를 한 호기에 3251억원(불변 가격)으로 잡고 있다. 밀폐 관리에 1436억원, 철거 및 대지 복원에 1089억원, 철거 폐기물 처분에 726억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경험적인 ‘평균가’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2003년 OECD 원자력기구(Nuclear Energy Agency)는 14개국 79개 원전의 철거비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이에 따르면 가압경수로(PWR)형 원전 폐로 비용은 평균 320달러/㎾이다. 이를 토대로 용량 58만7000㎾에 달하는 고리1호기의 폐로 비용을 계산해보면 약 2366억원이 나온다. 이 비용은 2001년을 기준으로 산정한 결과이니 지난 10년간 물가상승률 36.8%를 반영하면 고리1호기의 폐로 비용은 3237억원으로 늘어난다.

그런가 하면 2001년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서 발간한 자료 〈Nuclear Power in OECD〉는 한국 고리1호기의 설비용량당(㎿) 폐로 비용을 약 101만 달러(1999년 기준)로 보았다. 전체 설비용량으로 계산하면 7090억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9861억원에 이른다. 원전 한 호기 철거에 1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비용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원전이 위험한 것은 그곳에서 쓰고 남은 폐 핵연료와 작업복·신발·부품·공구 등 각종 물품에서 뿜어내는 방사능(중저준위 폐기물) 때문이다. 그래서 핵연료와 중저준위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비용까지 함께 산정해야 진짜 원전의 경제성을 따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 21기를 지금 당장 폐로한다고 가정할 때 전체 사후처리비는 얼마나 들까? ‘폐로’ 비용은 2003년 OECD 원자력기구가 적용한 기준으로, ‘핵연료 처리비’와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비’는 2008년 지식경제부 고시에서 책정한 비용 기준으로 계산해보았다(위 표 참조). 한국수력원자력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된 폐 핵연료는 51만2576다발(핵연료봉을 여러 개 묶은 것), 중저준위 폐기물은 8만8082드럼(200ℓ, 2011년 8월 기준)이다. 원자로 21기를 모두 폐로하고 폐기물들을 안전하게 밀봉·압축·냉각·수송하는 데 드는 비용은 모두 15조7026억원에 달한다. 


민간이 추산하는 해체 비용은 더욱 커

이마저도 ‘최소’ 추정 비용이다. 원전을 오래 가동할수록, 폐로 경험이 없을수록 폐로 비용과 폐기물 처리 비용도 늘어난다. 비교적 낙관적으로 비용을 산정한 OECD 보고서와 지식경제부 고시 기준을 적용했을 때 그 정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236억 엔(100만㎾급 원전 1기 기준)으로 추산한 원전 해체 폐기물 처리 비용을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은 그 30배에 달하는 6320억 엔으로 발표한 바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수치들이 모두 국내 원전 21기가 단 한 건도 ‘사고 없이’ 안전하게 가동을 멈춰 해체 과정을 밟는다는 가정 아래 추산된 비용이라는 점이다. 국제원자력 사고 등급(INES) 중 최악인 ‘7등급’을 기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해체하는 데 향후 10년간 265조원이 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만 봐도, 단 한 건 사고가 원전의 경제성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원전을, 우리나라 정부는 2030년까지 10기를 추가로 더 짓겠다고 밝혔다.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36%에서 59%까지 올리겠다는 계획(국가에너지기본계획)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독일 녹색당의 ‘하인리히 뵐 재단’ 랄프 스 이사장이, 원전 건설의 비경제성을 지적한 보고서 〈원자력의 경제성〉(2010년, 스티브 토머스) 서문에 쓴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원전은 특히 정부와 에너지 산업이 ‘신성하지 않은 동맹(Unholy Alliance)’을 맺은 곳에서 지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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