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룡1월12일 도쿄에서 조선통신사가 다닌 길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국경을 초월한 세계유산 등록 시도는 한·일 양국 간 새로운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1월12일 도쿄 미나토구의 일본 건축회관에서 열린 ‘조선통신사의 길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사무국장인 야노 가즈유키가 한 말이다.

한국 건축역사학회, 일본 건축학회, 그리고 일본 ICOMOS가 공동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는 한·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민간의 움직임을 통해 조선통신사가 200여 년 동안 지나온 한국과 일본의 문화 실크로드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운동의 첫발을 내딛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2년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문화 사절단이다.

지난해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된 지 400년이 되는 기념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조선통신사 행렬의 재현만 15회가 넘었고, 박물관과 전시관 14곳에서 기념 전시회가 개최되어 한·일 양국의 ‘선린과 우호’ 정신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조선통신사의 흔적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많이 남았다. 일본의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 그리고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조선통신사 흔적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하지만 일본에는 조선통신사 관련 유적과 건물이 잘 보존되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 자체가 당시 일본인에게는 대단한 문화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현 도모노우라의 후쿠젠지, 교토후의 쇼코쿠지, 시즈오카의 세이켄지 등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사찰과 접대 시설인 오카야마 현 우시도마에 있는 오차야가 현존한다. 시가 현은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에 ‘조선인 가도’라는 이름을 붙여 기념했다.

조선통신사 길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노력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유적이 부족한 한국은 다소 소극적이었다.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아닌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하자”는 한국 건축역사학회 김정동 교수(목원대)의 제안이 한·일 간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운하 건설하면 조선통신사 유적 모두 수몰"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유산은 크게 세 가지. 세계 (문화, 자연, 복합)유산, 세계 무형유산, 그리고 세계 기록유산이다. 김 교수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그림이나 도면, 당시 기록 등을 수집하고 공동 연구한 뒤에 이를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세계 문화유산이 아닌 세계 기록유산이라고 하면 현물이 남지 않은 한국도 그림이나 기록 등을 활용해 등록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라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심포지엄 포스터.
한국의 경우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 기록유산은 〈훈민정음〉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여섯 건에 달하지만 일본은 한 건도 없다.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제안이 오히려 일본을 적극 추인한 상황이 되었다.

심포지엄을 시작하며 일본 ICOMOS 위원장인 마에노 마사루는 회장에 한국인이 있는지 질문한 뒤에 “일본 사람이 36년간에 걸쳐 한국사람에게 고통을 드려 죄송하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서 한국과 친한 이웃이 되고 싶다”라고 사죄 인사를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전쟁 시기에 중국 장춘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전쟁 행위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상대 국가에 대한 애착과 신뢰, 그리고 존엄이 두터워질 것이고, 이는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6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한·일 양국 참석자는 모두 양국 국민이 조선통신사를 너무 모른다며 걱정했다. 한태문 교수(부산대)는 “1995년도에 조선통신사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넷 자료 검색창에 ‘조선통신사’를 치면 ‘017-신세기통신’라는 한국 통신회사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여론 보도 등을 통해 조선통신사에 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라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서울-부산, 오사카-도쿄의 1129㎞를 도보로 행진하면서 조선통신사 길을 돌아보았던 ‘21세기 조선통신사 우정 워크 모임’의 사무국장 엔도 야스오는 “일본의 40·50대 대부분은 조선통신사가 무엇이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10년 전에 처음으로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술이 교과서에 실렸다”라며 일본 내 실정을 소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일 양국 국민이 너무 몰라서 일어나는 유적 파괴 위험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히로시마의 시민단체에서 유적 보호 운동을 하는 오카다 요시히로는 “조선통신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히로시마 현과 후쿠시마 시를 상대로 개발 중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통신사의 길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다면 법률로 조선통신사 유적이 보호될 것이다”라며 한·일 공동의 세계 기록유산 등록 추진을 적극 호소했다.

히로시마 현 후쿠시마 시에 위치한 도모노우라는 모두 12차례 방문했던 조선통신사가 11 차례 입항했던 항구 도시다. 항구 주변에는 아직도 에도 시대의 건물이 건재하다. 후쿠시마 시는 몇 년 전부터 항구를 매립해 도로를 만들겠다는 도시계획을 추진해 주민이 반발하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는 반대 서명 운동을 전개하면서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김정동 교수도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려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 조선통신사가 걸어간 발자취와 거의 일치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유적 발굴 이전에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NHK의 논설위원인 모리 가즈오는 “남은 조선통신사 유적의 보호를 위해 지진·쓰나미·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 방지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라는 과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 초량에 있었던 왜관이 조선과 일본의 공동 작업으로 만든 건축물이었다는 것을 실증적 자료를 검증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낸 재일 건축가 부학주 씨는 “세계유산 등록 목표를 실현하기까지는 문제가 있겠지만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으로 이 운동을 전개해가자”라면서 한·일 간에 꾸준한 공동 논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한 발언자는 “유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설명하면서 잊혔던 한·일 양국의 선린 우호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가해와 피해’라는 근대사의 슬픈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명 도쿄=김해경 (아시아프레스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