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미셸(위)은 역대 대선 예비후보 부인 중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유세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편이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주위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너무 젊어서 안 된다, 경험이 없다, 선거자금 모을 능력도 없다, 피부색이 너무 검다, 아주 검지도 않다(완전한 흑인 아니다), 이름이 우스꽝스럽다(미국식 이름이 아니다), 백인들이 안 찍어줄 것이다. …그런데 제 남편 버락은 이겼습니다. 미국 유일의 흑인 상원의원이 됐습니다. 불가능과 두려움을 극복한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도 네거티브 선전이 많을 겁니다.…(중략) 버락은 여느 소시민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사람입니다. 잠잘 때 코도 골고 발 냄새가 나서 우리 딸애들이 아빠 침대에 들어가기 싫어할 때도 있지요.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놓기도 하고 버터를 냉장고 안에 넣지 않아 녹아버리게 하기도 하죠. 그러나 장보기는 잘합니다. 저는 성격이 강한 프로페셔널이라 남편은 제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버락은 아주 현명한 남자이기 때문에 강한 여자를 잘 다룰 줄 압니다.”

지난 1월25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시 유세장인 USC 대학 강당에 꽉 들어찬 2000여 청중은 미셸의 연설에 박장대소하고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미셸 오바마는 민주당 대선 유세장에 나타난 떠오르는 별이다. 지금껏 미국 국민에게 전혀 낯선 여인 미셸은 독특한 연설 스타일로 가는 곳마다 열풍을 몰고 다닌다. 솔직하고 서민적 말솜씨로 중·장년층을 감동시키는가 하면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정세 분석으로 젊은층과 지식인을 사로잡는다. 이같은 청중 장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셸, 버락의 데이트 신청에 '시큰둥'

시카고 남쪽 가난한 흑인 동네, 침실 한 개짜리 아파트에서 소방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네 살 때 이미 읽기와 쓰기를 마친 똑똑한 아이로 자랐다. 명문 프린스턴 대학(사회학)을 거쳐 하버드 법대를 졸업할 당시 교수들은 이미 그녀를 뛰어난 인재로 주목했다고 한다. “프린스턴에 다닐 때 흑인인 나는 대학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들지 않았고 어딘가 불편했다. 대학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나를 보수적 가치 지향으로 만들었다. 일류 대학을 나와 연봉이 높은 대기업 또는 대조직에 들어가 돈 많이 벌어 출세하겠다는 가치관을 갖게 했다(그의 졸업논문 제목도 〈프린스턴 대학 흑인 졸업생들의 가치관〉이었다).

시카고 법률회사에 취직한 미셸은 인턴 사원으로 입사한 변호사 버락 오바마와의 만남을 계기로 인생의 정신적 사상적 전기를 맞았다. 회사 지시로 버락의 멘토역을 맡은 미셸은 자연스레 버락과 자주 만났다. 어느 늦은 여름 데이트 신청을 받은 미셸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이 남자에게 별로 맘이 내키지도 않았고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그가 어딘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버락과의 데이트를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을 즈음, 그녀는 버락에게 이끌려 시카고 흑인 서민지역 커뮤니티 모임에 몇 차례 나갔다. 버락은 “흑인 지역사회는 이대로 살 수 없으며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어 ‘변화’시켜야 한다”라고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주민은 그의 강연에 감동했고 미셸은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민주당 지명전에 나선 버락 오바마의 캐치프레이즈는 ‘변화’다.

ⓒReuters=Newsis미셸 오바마(왼쪽)는 남편 버락 오바마(오른쪽)가 미국 사회의 갖가지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말한다.
16년 전 버락과 결혼한 미셸은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지역사회 봉사에 몸을 던졌다. 시카고 시 청년지도자 훈련국장, 커뮤니티 프로그램 국장 등 일련의 공직을 거쳐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시카고 대학 메디컬센터 대외/지역사회 담당 부총장에 올랐다.

아홉 살과 일곱 살 두 딸을 둔 미셸은 7개월 전 남편 연봉(16만 달러)의 두 배인 연봉 30여 만 달러(약 3억원)의 대학 부총장직을 버리고 선거운동에 나섰다. 그는 노련한 선거전문가들이 우글거리는 오바마 캠프에서 최고의 전략 참모 겸 연설자로 꼽힌다. 그녀는 남편 유세에 동행하기보다 따로 연설을 자주 한다. 역할 분담인 셈이다. 남편은 대통령감으로서 경륜·정책·철학·이상을 품위 있게 설파한다. 그의 유려한 언변에는 흑인 특유의 억양은 없고 시카고 명문 지식사회의 절제된 단어가 흐른다. 인종을 초월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을 표방하며 흑백 문제는 될수록 언급을 자제한다.

반면 미셸은 흑인 억양이 섞인 말투로, 약간은 수다스러운 젊은 어머니같이, 때로는 억척스러운 주부같이, 유창한 변호사같이, 약자를 위한 사회운동가같이, 매몰찬 대기업 CEO같이, 그때 그때 다양한 청중을 사로잡는다. 연설 때마다 빠지지 않는 양념은 촌철살인식 드라이 유머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장. 별처럼 빛나는 민주당 원로와 헤비급이 즐비한 연단 뒤에서 기조연설을 준비하던 정치 초년생 42세 남편이 갑자기 미셸에게 말했다. “여보, 너무 떨려서 가슴이 막힐 것 같아.” 미셸은 남편을 꽉 껴안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잘될 거야. 이 친구야!”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한마디가 남편의 긴장을 확 풀어준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미셸의 임기응변과 기지, 미국적 유머감각, 정면 돌파의 담력과 용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날의 명연설을 계기로 버락은 일약 민주당의 정치 스타로 떠올랐다.

극히 예민한 흑백 문제를 미셸은 정면으로 부딪힌다. 백인에게 암살된 흑인 민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의 날’을 기념하는 지난주, 미셸은 국민의 정서를 파고들었다. “남편이 낙선하지 않을까, 정치판에서 추해지지 않을까, 우리 가족이 다치지 않을까, 남편이 암살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버락은 우리 사회의 갖가지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출마했다. 과연 흑인이 백악관 주인이 될 수 있느냐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도록 버려둘 수는 없다. 백인 아닌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이 나라 정치 패턴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

힐러리에게 초일류 선거 참모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있다면 오바마에게는 미셸이 있다. 시카고에서 만난 오바마 캠프의 언론담당관 케이티 호건은 그녀가 학력·경력·사회봉사·연설·외모· 여성표 흡수력에서 오히려 힐러리를 앞선다고 주장했다. 뉴욕의 월간지 〈에센스〉는 2006년 미셸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전문직 여성 25인 중 하나로 뽑았고 유명 잡지 〈VANITY FAIR〉는 그녀를 2007년 세계 여성 베스트 드레서 10인중 하나로 선정했다. 재색을 겸비한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미셸은 수수한 옷차림에 자주 두 딸의 손을 잡고 유세장에 나타난다. “일이 늦어도 될수록 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잔다. 남편도 두 딸과 나를 끔찍이 사랑한다. 가족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면 백악관을 다스릴 수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성 스캔들을 겨냥해 상대의 약점을 찌른다.

ⓒReuters=Newsis일부에서는 힐러리 후보(왼쪽)가 미셸(오른쪽)과 대결하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클린턴 부부의 정책 위주 선거운동과 대조적인 미셸의 현란하고 억척스러운 스타일에 거부감을 보이는 시민도 많다. 남편의 사적인 버릇이나 집안의 사소한 일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이 남편 이미지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참모들은 걱정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과 가정불화를 자주 들먹이는 것도 감점 요인이다. “인신 공격을 혐오하는 이 나라 정치 풍토에서 미셸의 발언은 역효과를 낼 것이다”라고 메릴랜드 대학 볼티모어 캠퍼스의 딕 설리번 교수(사회학)는 지적한다. 미셸은 남편을 너무 앞서간다는 비난도 받는다. 몽고메리 컬리지 H. 데이비스 교수는 “미셸은 남편이 강한 여자를 잘 다룰 줄 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닌 것 같다”라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셸의 유세 회오리는 민주당 예비 선거판을 계속 어지럽게 휘저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토 미디어 그룹의 R. 아마토 박사는 “흑인 버락 오바마 열풍이 미국 정치사의 전환기적 사건이라면, 정치 장외 인물 미셸의 출현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흑인 여성 정치 스타의 등장을 예고한다”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공화당·민주당을 통틀어 숫한 역대 대선 예비후보의 부인 중 미셸만큼 전면에 나서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선거 유세를 벌인 여성은 없었다는 것이 정치계의 중론이다.

4년 후 '힐러리 대통령'과 미셸 후보 대결?

뉴욕 데일리뉴스 컬럼니스트 스탠리 크라우치는 미국의 흑백 젊은이와 여성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젊고 신선한 오바마 부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꿈을 가지는 것이 시간 낭비가 아니요, 기회를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기 학대가 아니며, 우리도 드디어 인간 대우를 받을 때가 왔음을 믿는 것은 허망한 기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유세장이나 유튜브를 통해 미셸의 연설을 들어본 유권자라면 힐러리 후보가 토론회에서 미셸 후보를 만나지 않은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번 지명전에서 오바마가 패배한다면, 4년 후 재지명을 노리는 힐러리와, 버락의 지원 유세를 받는 미셸 간에 또 한번의 흑백 대결 가상도를 그려보는 미국인이 늘어간다. 제2차 클린턴-오바마의 대결은 물론 민주당이 올해 대선에서 공화당을 이길 경우를 전제로 한다. 힐러리 유세장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현재 대세는 민주당 승리로 기울었으니, 백인 여성 대통령, 아니면 흑인 여성 대통령을 고를 날도 그리 머지않았으리라”며 크게 웃었다. 미국식 선거의 재미를 풀이하는 말이다.

기자명 워싱턴=김진화 순회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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