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 칸(18)은 지난해 수도 카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프가니스탄 청년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열이 높은 공무원 아버지를 둔 덕에 제대로 고등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바시르는 올해 카불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올해 초 주 청사로 뛰어든 자살폭탄 테러로 아버지가 사망해 그가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세 동생을 어떻게든 책임져야 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러 나섰다”라고 바시르는 말했다.

하지만 아프간의 취업 시장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기껏해야 월급 30~40달러(약 3만1000~4만2000원)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돈으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 힘들다. 아프간 치안이 그래도 괜찮았던 2005년 이전만 하더라도 외국 기업이나 시민단체·국제기구가 아프간에 많이 들어와 바시르처럼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아프간 치안이 불안해진 지금은 외국인 대부분이 떠나고 없다.


ⓒAP Photo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 한 마을에서 7월19일 미국 해병대원이 반군을 찾고 있는 모습을 한 소녀가 아이를 안고 바라보고 있다.

결국 바시르가 찾은 직업은 위험을 무릅쓰고 총을 드는 사설 경호원이었다. 영국계 경호회사인 이 업체에 취직된 것만으로도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직업이지요. 언제 죽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 길밖에 없습니다. 내 또래들은 대부분 일당 노무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학교 못 가는 아이들 400만명

또 다른 아프간 청년인 나사르 타지(16)는 길거리에서 담배나 음료를 파는 좌판 장사를 한다. 7세부터 이 일을 해서 자기 나름의 구역도 가지고 있다. 학교는 다녀보지 못했고 글과 숫자도 간신히 읽는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말했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엄두를 내본 적이 없다. 사촌 형에게 글 읽는 것을 배운 것도 순전히 내가 원해서였다. 아무도 나의 교육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바시르나 나사르는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운 좋은 청소년이다. 아프간 청년 실업은 매우 심각하다. 2010년 현재 아프간은 인구 2910만명에 이르는 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나이별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이 18.2세에 불과하다. 30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70%를 넘는다. 하지만 아프간 청년실업률은 통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다.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해당하는 400만명이 여전히 사회·경제·안보 등 여러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좁다. 탈레반 병사로 가거나 아프간 군인 또는 경찰을 지원한다.

탈레반 병사는 한 달 기본급이 200달러(약 21만원)에 성과급이 따로 지급된다. 그 결과 한 달 평균 300달러(약 31만원) 이상을 번다. 아프간 군인과 경찰은 월수입이 이보다 한참 적은 60달러(약 6만3000원)가량이다. 그나마도 상관에게 바쳐야 하는 돈이 많아서 군인이나 경찰보다 탈레반 병사를 더 선호하는 추세다.

ⓒ사진 페이스북 갈무리바크다시 시아와시 의원.
많은 아프간 청년이 이런 암울한 현실에 놓여 있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10년간 아프간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이다. 나사르는 “나는 탈레반 정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군이나 연합군 차가 길거리를 다니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내 또래 아이 대부분이 그렇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금지했던 방송이나 음악 등을 마음껏 보고 듣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바시르는 “방송에 나오는 외국은 너무 멋지다. 여자들도 머리와 얼굴을 다 보여주고 다니는 것이 제일 신기했다. 지하철이나 기차도 너무 신기하다. 그런 것들은 아프간에서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프간에서 아무리 잘살아보려 해도 그들만큼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처한 현실에 화가 나고 우울하다”라고 바시르는 말했다.

이들이 금요일마다 가는 모스크에서 이슬람 지도자는 “우리가 이렇게 힘든 현실을 사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 때문이다. 여러분의 모든 힘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지하드(성전)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종교가 갈수록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는 것이다.

누리스탄의 한 마을에서 작은 병원을 하는 의사 하미온 씨(가명)는 자신의 17세 아들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그의 아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친구들과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종교학교 마드라사를 다녀온 뒤 급격히 변했다고 했다. “내 아들이 자살폭탄 공격은 이슬람의 용기와 순교를 위한 좋은 도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라고 그는 말했다.

아들의 소지품에서 나온 CD는 온통 순교자에 관한 것이었다. 아들은 “내가 순교하지 않으면 미군 폭격기에 우리 가족 모두가 죽을 겁니다. 나는 가족을 위해, 이슬람을 위해 순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란 그는 아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친한 이슬람 지도자를 모셔다가 잘못된 순교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2009년에만 어린이 359명 사망

하미온 씨의 아들뿐 아니라 많은 아프간 청소년이 잘못된 지하드에 동조한다. 일부 탈레반 무장 세력은 어린 학생들에게 폭발물을 장착한 조끼를 입혀 아프간군이나 다국적군 차량에 접근하게 하는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암담한 경제 상황과 미래가 그들을 이렇게 잘못된, 자포자기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미군과 연합군의 민간인 대량학살 논란 속에서 아이들과 청소년 사망자 비율은 제법 높다. 유엔에 따르면 2009년 아프간에서 전쟁으로 죽은 민간인은 2400여 명이며, 이 중 359명이 어린이였다. 어린이 131명은 연합군 공습으로, 22명은 연합군의 야간 습격으로 사망했다. 탈레반에 의해 숨진 어린이는 128명이었는데, 이 중 7명은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돼 목숨을 잃었다. 집에서 잠을 자다가 연합군에게 희생되기도 했다. 영국 〈더 타임스〉에 따르면 2009년 12월27일 새벽 3시께 아프간-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가지 칸 마을에서 한집에 살던 형제와 친인척 8명이 연합군의 근거리 저격으로 숨졌다.

이들은 모두 12~18세로 인근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연합군은 이들이 사제 폭탄을 만들어 밀매하는 탈레반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실수를 저질렀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꽃다운 아이 8명의 생명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아무리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더라도 눈으로 아이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 총으로 아이들을 사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연합군의 이 같은 민간인 사살이 반미 감정을 키운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창 사춘기인 청소년에게는 더욱더 큰 분노를 심어준다.

지난 10년간 계속된 전쟁, 높은 문맹률, 심각한 경제난으로 이중고를 겪는 젊은이들 사이에도 스타가 있다. 등원한 지 1년도 안 된 초선 국회의원 바크다시 시아와시(25)가 그 인물이다. 그는 거리낌 없는 발언으로 단숨에 아프간 정가의 스타로 떠올랐다. 심지어는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그를 독재자로 몰아붙였다. 아프간에서 누구라도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새파란 의원이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불만에 가득 찬 많은 아프간 젊은이가 밥과 기회를 찾아 아프간의 적들에게 넘어가고 있다”라며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아프간 ‘폴로 TV’ 방송사 기자 출신인 시아와시가 아프간 청년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그에게는 연일 젊고 열정적인 지지자가 몰리고 있다.

10년간 아프간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은 외국인을 겪어왔으며, 인터넷에도 능숙한 시아와시 의원 같은 젊은 청년 세대의 약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프간 전쟁이 일어날 당시 어린아이였던 이들이 이제는 커서 청년이 되었다. 이제 그들이 아프간의 미래를 책임질 차례이다. 하지만 이들 가슴속에는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원망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프간 경제 상황에 대한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이들이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아프간 문제를 짊어지고 갈 수 있게끔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어른 세대의 전쟁을 더 이상 그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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