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 이어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2009년 말 그리스에서 출발한 유럽의 채무위기가 유럽 내 강대국인 프랑스의 위기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나온 소문이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영국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의 본질은 채무다. ‘유럽 채무위기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중앙은행 로버트 조엘리크 대표는 〈더 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아 판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그동안 경제위기에 빠진 유럽 국가를 지원했던 프랑스와 독일 역시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개인 채무가 도를 넘어서면서 초래했던 위기와는 달리 2011년 경제위기는 정부 부채가 도를 넘어섰다. 프랑스의 경우 국립경제통계연구소(Insee)에 따르면 2011년 1분기 채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84.5%, 즉 1조6460억 유로에 달한다. 이웃 나라인 이탈리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탈리아의 채무는 1992년 이래 GDP의 120%를 초과해왔는데 현재 그 규모는 1조9000억 유로이다.

프랑스 국민은 국가 부채를 심각하게 걱정한다. 8월13일 리서치 기관인 이포프(IFOP)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82%가 국가 채무를 걱정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채무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무엇보다 국가재정을 새롭게 구축해 신용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부채 해결을 위한 보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독일·프랑스 정상, 금융거래세 도입 합의

때마침 유럽 국가의 두 수장이 만났다. 8월16일 독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두 사람은 부채로 인한 파산 위기가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유럽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유로존 국가들의 경제정책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중 가장 기대를 모은 유로본드 발행은 독일이 반대해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유로존 공동위원회 창설과 금융거래세(일명 토빈세) 도입에 대해서는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AP Photo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은 유로본드 도입에 합의하지 못했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프랑스 야당인 사회당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회당 당수인 마르틴 오브리는, 유로본드 창설은 유럽 국가들의 부채를 공동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던 방안이라며 이것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중도파 정당인 민주운동(모뎀)은 이번 회담을 조심스럽게 논평하면서도 금융거래세 도입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는 “단일 화폐가 우리를 죽인다”라면서 유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2년 제임스 토빈이 주장해 ‘토빈세’라고도 불리는 금융거래세는 막대한 소득을 올리는 금융기관·기업·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거대 금융자본과 투기자본을 막는 데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금융거래세는 이상주의적이거나 혁명적인 내용 때문에 비현실적인 제도로 인식되어왔다. 


“토빈세가 경제성장 걸림돌 될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세계화 비정부 기구인 아탁(ATTAC)이 오래전부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다. 프랑스 정치권은 토빈세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현실성에 대해서는 좌우파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유럽 전역이 이 제도를 공통으로 도입하지 않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권이 태도를 바꾸어 토빈세 도입에 적극 나선 것이다. 이는 국가 채무 문제가 현재 위기의 본질이면서 2012년 대선의 핵심 사안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우파 진영인 급진 사회당의 대선 후보인 장루이 보를로는 8월 태도를 바꾸면서 ‘유럽에서 금융거래세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의회는 올해 3월 금융거래세 도입을 포함한 금융결의 혁신안을 가결시켰다. 프랑스 하원도 지난 6월 투표를 통해 이 세제를 통과시켰다.

세금 규모와 관련해 사회당은 금융거래세 세율을  0.05%로 제안했는데, 이는 유럽의회 기준과 같다. 이렇게 해서 유럽이 거둘 수 있는 세금 규모는 2000억 유로에 이르리라 보인다. 문제는 거둬들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프랑스 예산장관인 발레리 페크레는 이를 경제발전 지원과 더불어 현재의 국가 부채를 갚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회당은 유럽 국가들의 발전 지원, 지구온난화 대비, 부채 탕감 등을 위해 이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토빈세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독일 증권거래소를 비롯한 금융계는 이 제도가 전 세계에 도입되지 않을 경우 유럽만 피해를 보게 돼 결국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 본다. 스웨덴이 대표적 실패 사례다. 스웨덴은 1980년대에 금융거래세를 도입했으나 1991년 폐지했다. 세수 증가로 인한 이득보다 북유럽 재정 거래가 런던으로 이전되면서 경제적 손실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융거래세 도입과 운용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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