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정희상
1951년 2월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중에 산청·함양 주민 705명을 학살하는 장면을 재구성한 미니어처.

기자는 지난 20년 동안 지리산 자락에 있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마을을 세 번 들렀다. 첫 번째는 1989년 4월의 어느 봄날, 당시 월간 〈말〉 새내기 기자 시절, 뜻한 바가 있어 산청읍에서 하루에 두 차례 다니던 시외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깊은 산중에 있는 방곡마을에 스며들었다. 그 무렵 공포와 감시에 가위눌린 마을 주민 10여 명과 나흘 밤낮을 사랑방 대담과 현장 취재를 번갈아 한 끝에 세상에 내보낸 보도가 산청·함양에서 벌어진 700여 양민학살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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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산청·함양 사건 희생자 합동묘역과 추모기념관이 들어섰다. 위령탑.

이승만 정권 시절 양민을 적으로 보고 작전을 수행한 이상한 부대가 하늘 아래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가현, 방곡·점촌 사람들을 몰살하고 그 아래 5개 마을 사람들을 반으로 나눠 무차별 사살했다. 1951년 2월7일의 일이었다.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인 이른바 ‘견벽청야’라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손곡리 지곡리 서주리마을 등에서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집단학살했다. 바로 그 부대가 사흘간 행군을 더한 끝에 거창군 신원면으로 넘어가 주민 719명을 다시 집단학살했다. 이른바 거창양민학살 사건이다.

두 번째는 〈시사저널〉에 근무하던 1995년 5월, 사진기자와 다시 이 마을을 찾아 ‘1500 양민 스러져간 겨울 골짜기’라는 기사를 냈다. 산청·함양 양민학살사건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거창 양민학살사건의 바로 그 가해 부대가 거창 사건 사흘 전에 저지른 끔찍한 양민학살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위정자들이 이 진실을 역사에서 가위질해버렸다는 사실을 추적해 고발했다. 대대로 지리산 자락에서 살아온 것이 죄가 되고, 흙 파고 씨 뿌린 일이 죄가 되어 자기 나라 군대의 총알에 맞아 죽은 백성들은 산발한 채 원혼이 되어 반세기 동안 하늘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추적 보도 이후 산청·함양에서는 유족들이 살아온 통한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6년 1월5일,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거창 산청·함양 사건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특별법에 따라 합동묘역 조성 공사가 시작돼 2004년 드디어 학살 현장에 705명의 합동묘역과 추모기념관이 들어섰다. 

비인도적 범죄행위 고발하는 곳

그리고 이번에 기자는 세 번째 발걸음을 해 추모기념관을 찾았다. 처음으로 사건을 세상에 알린 후 20여 년 세월 속에 당시 중년이던 생존 증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했지만 중년이 된 기자를 대번에 알아보고는 반가이 맞아주었다. 마침 이곳 추모기념관이 지리산 둘레길 제5코스(동강리~수철리 구간 12㎞)에 포함돼 걷기에 나선 적잖은 외지인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지난해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2일〉이 이곳을 방영한 뒤부터 많을 때는 하루 1000여 명의 추모객이 다녀갈 정도라고 한다.

묘역에서는 누구나 경건한 마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국민은 하늘과 같고, 역사는 정의의 편이며, 인명은 절대 가치가 있음을 확인한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이 후손에게 남긴 자유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묘역 입구에는 산청·함양 사건 역사교육관이 있다. 두 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제1전시실은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어머니가 품속에 고이 잠든 어린 자식을 안고 애통해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비무장·무저항의 민간인을 재판이나 적법 절차 없이 무차별 살해한 비인도적 범죄행위를 고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곳에는 문바위 모형, 재판 모형관, 군인들의 마을 방화 홀로그램, 사건 증언 영상실, 사건 당시의 탄환·총기 전시, 학살 대상 4개 마을 사건 현장 재현 모형 등 역사의 산 교육 자료가 잘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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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명단

제2전시실은 민간인 학살 당시 산청·함양 지역 주민들이 살아온 생활 터전인 마을 풍경과 삶의 모습을 재현해 사건 당시를 체험해보고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시절 지리산 주민들의 초가집을 실물로 복원했고, 생활용품·농기구 등 물건을 통해 유족들이 살아온 통한의 역정을 담았다. 또 사건 당시의 마을 풍경을 정감 어린 닥종이 공예로 재현해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다함께 꿈꿔보았다.

물론 산청에 추모공원이 들어섰다고 해서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피해자 보상 관련 입법은 아직도 표류 중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지리산 골짜기 곳곳,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같은 시기에 자행된 광범위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뚜렷한 해결 실마리가 잡히지 않은 채 정부가 묵살로 일관해 피해 유가족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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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군법회의 재판 모습.

    


관람 정보

주소:경남 산청군 금서명 방곡리 722
관람 시간:오전 9시~오후 6시
휴관일:연중 무휴
관람료:무료
전화:055-970-6181
홈페이지:shchumo.sancheong.ne.kr
놓치지 마시라:지리산 둘레길 5코스를 걷기로 결정했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기억과 위무는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니까.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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