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는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60년 전 군인과 경찰의 불법행위로 집단 희생된 울산 보도연맹 학살사건 유족들의 함성이었다. 대법원1부는 이날 유족 48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족 80여 명과 함께 울산에서 올라온 김정호 유족회장(64)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이제야 풀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1949년 과거 좌익 활동이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사상 개조’ 시킨다며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한 뒤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국적으로 무차별 집단 총살한 것이 보도연맹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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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는 1950년 8월10일 전후로 407명이 희생됐다. 김정호 회장의 부친은 당시 울산 농소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다 끌려가 총살당했다. 그는 “1960년대 초 울산공단이 들어서고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지만 우리는 연좌제 신원조회에 걸려 공단 취업조차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원망하며 살아온 피해 유가족들에게 이날 판결은 비로소 국민 대접을 받게 됐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들의 첫 반응이 ‘대한민국 만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울산 사건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학살사건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정의를 바로세운 첫 상징적 조처로 받아들여진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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