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건과 생활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유엔의 특별기구이다. ILO는 협동조합국을 두고 있다. 그 부서의 책임자인 마리아 엘레나 차베스 헤티그 씨를 만났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사무부총장을 지낸 그녀는 유엔이 정한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준비하는 위원회(COPAC)’에도 코디네이터로 참여 중이다.


‘경제위기=협동조합의 기회’인 까닭

노동기구와 협동조합이 무슨 상관이 있나 의아할 수 있다. 그녀에 따르면, ILO는 설립 연도인 1919년부터 협동조합과 관련한 부서를 두었다. 사회정의를 이루고 노동권을 향상하는 데 협동조합이 중요한 조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헤티그 씨는 세계의 협동조합이 1억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좋은 일자리’를. 그녀는 “좋은 일자리는 인권을 존중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을 주고, 노동자가 자기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윤리적 일자리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차형석마리아 엘레나 차베스 헤티그 씨.
협동조합은 역사적으로 경제 약자들이 불황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 조직으로 등장했다. 그녀는 “경제위기 때 협동조합 사업 모델이 강점을 보인다. 경제위기 때 협동조합원 숫자가 증가했다”라고 강조했다. ‘경제위기=협동조합의 기회’라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때 전 세계에 걸쳐 협동조합은행이 정부 지원을 요청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 시기 협동조합 은행은 더욱 성장했다. 예를 들어 라보은행은 2008년 네덜란드 전체 대출 시장의 42%를 점유했고, 지방 회원은행의 예금도 20%가량 증가했다. 2008년 스위스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행에는 조합원 15만명이 새로 가입했고, 120억 스위스 프랑(약 15조4000억원)이 신규로 유입되었다. 이 은행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스위스에서 네 번째 큰 은행으로 도약했다.

경제위기 때 잉여금을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사용한 협동조합 사례도 있다. 2009년 스페인에서는 기업 약 2.4%가 파산했다. 그러나 스페인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그룹에서는 120개 가입 협동조합 가운데 0.8%인 1개만 파산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한 사람도 없다. 몬드라곤에서는 한 협동조합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이면 다른 협동조합에서 직원을 재고용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몬드라곤협동조합에는 2008년 기준 노동자 9만2000여 명이 일한다. 헤티그 씨는 “협동조합은 이윤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대안적 사업 모델이다. 전반적으로 일반 기업보다 경제위기를 잘 견뎌냈다고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ILO는 정부가 모든 교육기관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헤티그 씨는 “2012년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교육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캐나다·이탈리아에서는 협동조합에 관한 내용을 커리큘럼에 넣어 가르친다. 좋은 사례를 모으고,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와 협의해 교육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COPAC에는 유엔, ILO, ICA,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구가 공동으로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준비 중이다. 헤티그 씨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는 기업 형태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원을 이해하고, 협동조합에 가입하며, 그 협동조합에서 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면 다른 기업 모델보다 우선적으로 협동조합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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