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오랜 세월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사는 버마 국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위는 지난해 8월 ‘샤프란 혁명’ 모습.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신문을 ‘대포보다 더 무서운 무기’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레닌이 창간한 신문 〈이스크라〉와 〈프라우다〉는 러시아 혁명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쿠바 혁명 당시 카스트로 게릴라군은 바티스타 정부군의 맹렬한 추격 속에서도 단파 라디오 송출기만은 목숨처럼 아꼈다. 카스트로군의 ‘레벨데 라디오’ 방송은 바티스타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고 농민에게 쿠바 혁명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가장 유력한 연결 고리였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친미 팔레비 왕조를 전복시킨 회교 혁명의 도화선은 카세트 테이프였다. 회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망명지인 파리에서 녹음한 연설문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가 이란으로 밀반입되어 이것을 시민들이 은밀히 복사했고, 마침내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 속에서도 현장 상황이 지구촌 곳곳으로 알려져 국제 여론이 조성되었던 데에는 팩시밀리의 공이 컸다. 중국 정부군과 대치 중이던 베이징 대학 학생들이 팩시밀리를 통해 시시각각 외부로 소식을 전달했다.
이렇듯 미디어는 현대사에서 혁명이나 시민 봉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IT 기술을 활용한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에 불만을 품은 옛 소련 군부의 기습 쿠데타를 무력화한 것은 이메일이었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모두 탱크로 장악한 쿠데타군도 인터넷은 그만 간과하고 말았다. 쿠데타 저지를 호소하는 옐친의 이메일이 모스크바 시민을 붉은 광장으로 모이게 만들었고, 쿠데타는 결국 시민의 힘에 의해 무력해졌다. 멕시코 차파티스타 농민 게릴라의 인터넷 활용 전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 퇴진 운동이나 ‘오렌지 혁명’이라 일컬어진 우크라이나 민주화 운동에서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시위대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버마 서민, 만원짜리 라디오 구입도 ‘쩔쩔’

지난해 8월 버마에서는 ‘샤프란(버마의 승복 색깔) 혁명’이라 불리는 유혈 시위 사태가 또 한 차례 벌어졌다. 지금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오랜 세월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사는 버마 국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버마의 민주화 항쟁 소식은 유사한 역사 경험을 공유한 한국인에게 더욱 애틋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부터 국내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민주화 운동의 효과적 무기인 미디어를 버마 국민의 손에 쥐여주기 위해 온라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피스 라디오(Peace Radio) 캠페인’이 그것인데, 네티즌의 모금을 통해 라디오를 구입해 버마 국민에게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뉴시스‘피스 라디오 캠페인’(위)으로 모은 라디오는 2월 중순쯤 버마인에게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라디오일까? 그것은 버마 국민이 외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가 바로 라디오이기 때문이다. 현재 버마의 모든 언론 매체는 사실상 독재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마에는 라디오 방송사 두 개와 텔레비전 방송사 세 곳이 있는데 모두 국영이다. 이들 방송은 철저히 정부의 통제 아래 놓여 있으며, 따라서 독재 정권의 견해만을 일방으로 설파하는 철저한 어용 방송이다. 신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 신문이라 할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나 ‘미얀마 타임스’는 사실상 관영 언론으로 친정부 기사만 양산할 뿐이다. 물론 인터넷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빈곤층인 버마에서 인터넷은 아직까지 보편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인터넷에 대한 검열이 수시로 자행되며, 심지어 정부가 인터넷망을 일시로 끊어버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버마 승려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행진을 재개하자 정부가 곧바로 인터넷망을 차단해버렸다. 결국 제도권 언론 매체 중에서 버마 국민이 정부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다행히 버마 국경 지대에는 민주화 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DVB(Demc ratic Voice of Burma)라는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BBC· VOA(Voice of America)· RFA(Radio Free Asia) 등 버마어를 포함한 다국어로 방송 중인 외부 채널 청취가 가능하다. 이들 4개 라디오 방송이야말로 버마가 닥친 현안 및 주요 동향, 독재 정권을 향한 비판과 민주화 메시지를 들려주는 유일한 미디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버마에 라디오 보급률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 돈으로 개당 1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라디오 가격은 버마 서민이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따라서 버마 국민 손에 라디오를 쥐여주는 일은 곧 레닌의 표현대로 ‘대포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지원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피스 라디오 캠페인, 현재 300여 명 참여

지난해 11월 시작된 ‘피스 라디오 캠페인’은 지금까지 시민 300여 명이 참여해 800만원 가까운 후원금이 모였다. 이 돈으로 구입한 라디오에는 후원자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진다고 한다. 가수 안치환, 영화배우 이문식 등 낯익은 스타와 손봉숙·이목희 의원 등 정치인도 이미 후원자로 참여했다. 이 캠페인을 주관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월 중순쯤 버마-태국 국경지대를 직접 방문해 15개 버마 민주화 단체에 직접 라디오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라디오 전달 과정을 생생한 영상으로 담아 인터넷에 공개할 계획이다. ‘피스 라디오 캠페인’ 실무를 맡은 ‘함께하는 시민행동’ 이미희 간사의 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캠페인을 벌이다 보면 태안 사태처럼 국내 당면 현안에 대한 모금이 시급한 곳도 많은데 굳이 외국의 민주화 운동 지원까지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버마의 상황을 단지 다른 나라 일이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디든 지원이 필요한 곳이라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또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니까. 이번 캠페인을 통해 보여준 국내 네티즌의 작은 관심과 참여가 틀림없이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기자명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 교수·NGO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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