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러시아는 미국의 정보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글로나스를 개발하고 있다(위).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우주 개발과 인공위성 기술에 강한 나라다. 요즘 러시아는 미국의 GPS 프로젝트에 맞서 ‘글로나스(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프로젝트를 띄우려 한다.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강한 러시아’ 부활을 꿈꾸는 군사적 이유도 있다.

글로나스는 인공위성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상의 목표물 위치를 정확히 추적해내는 ‘위성항법 시스템’이다. 동서가 이념으로 팽팽히 맞섰던 냉전 시절, 옛 소련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1982년 첫 위성을 발사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재정 문제로 중단되었는데, 러시아가 고유가로 외환 보유 세계 3위의 부국이 되자 이를 재가동했다. 이로써 ‘위성항법 시스템’ 영역에서 미국의 GPS, 유럽의 갈릴레오, 러시아의 글로나스 간 3파전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위성항법 시스템’은 미국이 개발한 GPS이다. 1978년 펜타곤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1995년 24기의 위성이 궤도에 오르면서 완성되었다. 당초 요격 미사일을 유도하는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GPS는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 흐름이 변하면서 항공기·선박·자동차 등 민간 영역으로 이용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미국에 맞서 유럽연합(EU)도 갈릴레오 ‘위성항법 시스템’을 출범시켰다. GPS와 글로나스가 군사용으로 국가가 개발한 데 반해 갈릴레오는  민간용으로 민간 자본이 개발·추진하고 있다. 유사시 미국이 GPS 사용을 통제할 것이라는 염려에서 출발한 갈릴레오 프로젝트는 미국의 거센 반대와 34억~36억 유로라는 막대한 비용을 무릅쓰고 추진되었으며, 올해 본격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정보 독립을 실현한 셈이다. ‘위성항법 시스템’은 기술 차원을 넘어 정치 사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갈릴레오는 지구 궤도 2만3000km 상공에 쏘아 올린 위성 30기를 통해 반경 1m 내 물체까지 인식·추적이 가능한 야심작이다. 즉 반경 30m 내의 물체를 추적하는 GPS보다 우수하다.

러시아가 글로나스 프로젝트를 재개한 까닭도 미국의 정보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러시아가 이 프로젝트를 재개한 계기는 이라크 전쟁이다. 2003년 전쟁 직전 이라크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이 시리아로 이동하던 도중 미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러시아는 미국이 GPS 정보의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고 인식, 독자 정보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을 실감했다. 때마침 유가 상승으로 지갑이 두둑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중단된 글로나스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전폭 지원했고, 이 프로젝트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글로나스, GPS보다 정밀”

현재 글로나스는 옛 소련 때 쏘아 올린 위성 8기를 포함해 지난해 띄운 위성을 합쳐 총 18기의 위성과 지상 관제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위성 18기를 운용해서 우선 올해 중반부터 러시아 전역에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나아가 2009년 말쯤까지 위성 6기를 추가로 발사해 총 24기를 운용하고, 2010년부터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시한다.

글로나스는 GPS와 다소 차이가 난다. 우선 주파수 분할 다중방식을 채택해 위성마다 반송파와 주파수가 다르다. 또 GPS에서 군사용으로만 사용하는 P코드를 글로나스는 민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위성항법 시스템’은 우주 부문인 위성을 비롯해 관제 부문인 지상 관제탑, 그리고 사용자 부문인 단말기 등으로 구성된다. 글로나스 관제탑은 모스크바 브누코바 공항 관제탑을 현대화해 이용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처음 등장한 글로나스 단말기는 인기가 대단했다. 글로나스 프로그램의 주무 부처인 러시아 연방 우주국 아나톨리 페르미노프 국장은 “최초 시판된 단말기 1000대가 20분 만에 동났다”라며, 수십억 달러로 추산되는 단말기 시장 공략 전망이 밝다고 내비쳤다. 그는 “글로나스 단말기는 글로나스 신호는 물론 GPS 신호도 받을 수 있다. 글로나스가 미국 GPS보다 목표물의 위치를 더 정밀하게 추적한다”라고 자랑삼아 덧붙였다. 하지만 글로나스 채널은 GPS보다 8개 적은 12개다.

글로나스는 군사용 이외에 지도 제작·지하 매장물 탐색·구조 서비스·등산·레저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된다. 최근 글로나스는 러시아 지질학자들에게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 그들은 글로나스를 컴퓨터 프로그램과 결합해 지하 광맥을 탐색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글로나스는 2009년 말쯤 인공위성(위) 24기를 운용할 예정이다. 오른쪽은 글로나스 단말기.
글로나스 프로젝트와 관련된 푸틴 대통령의 일화가 하나 있다. 2007년 8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로부터 글로나스 프로젝트에 관해 상세히 보고를 받은 푸틴은 글로나스는 러시아 국민이나 외국인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코냐(그의 애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도 글로나스 단말기를 구입해야겠군” 하고 농담을 던졌다. 이에 세르게이는 “내년부터 글로나스가 개나 고양 목걸이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라고 농을 받았다.

러시아 측은 글로나스를 평화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글로나스가 군사 목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군사 전문가 니콜라이 골로블료프와 일리야 크람니크는 인터넷 통신 Lenta.ru에 기고한 글에서 글로나스 프로젝트가 군 현대화 정책의 일환임을 밝혔다. 모스크바는 펜타곤이 2003년부터 추진 중인 ‘미래 전투 시스템’ 프로그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각국의 군 현대화 정보 수집에도 열을 올린다. 특히 ‘미래 전투 시스템’과 연계된 ‘랜드 워리어(Land Warrior)’ 프로그램은 러시아군 소식통들의 주 관심사다. 소식통에 따르면 랜드 워리어는 컴퓨터와 GPS로 통제되는 디지털 장비를 장착한 군복에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다. 병사 한 명의 무장 비용은 자그마치 7만 달러에 달한다. 아울러 러시아는 한국군이 추진 중인 로봇 병사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보였다.

군 현대화 작업은 러시아군의 당면 과제다. 러시아군은 글로나스 단말기를 철모에 부착해 헤드세트로 활용할 전망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 디지털 전자 장비가 신속한 작전 명령 하달과 정보 교환으로 작전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휴대용 내비게이터는 아군은 물론 적군의 위치까지 포착하는 나침판 기능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러시아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휴대용 글로나스 단말기(NPI)는 ‘2007년 항공 우주쇼’ 전시회에서 최초로 선보인 바 있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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