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100일’ 즈음에 어쩌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지도 모를 소리들이 들려왔다. 책명 그대로 ‘체르노빌의 목소리’다. 끔찍하다. 세상에 이보다 무서운 소리는 다시 없을 것이다. 책을 덮을 즈음, 이 책을 안 본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빈번하게 일어났던 인간종끼리의 학살 소식과는 다르다. 이 책도 증언집이지만 인간종끼리의 싸움박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리하고도 또 다르다. 굳이 전쟁이라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전쟁이다. 방사선은 빛도 색깔도 형체도 없다. 원자로 속의 이 불은 인간이 붙였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너머에 있다. 처음부터 이런 위험한 불장난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쓴 핵은 전쟁용이고, 전력을 얻기 위해 사용한 이 핵은 평화용이라는 말은 틀린 구분이다. 핵과 평화가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이 일찍이 그 간명한 사실을 인류에게 경고했건만, 인류는 체르노빌을 서둘러 잊어버리고, 방금 터진 후쿠시마도 그 실상을 극구 감추려 한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출신 기자 알렉시예비치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100여 명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증언집이다. 증언자들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날의 다른 이들을 위해 증언에 임하고 있었다. 

ⓒAP Photo
체르노빌 발전소(위)는 2000년 영구 폐쇄되었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체르노빌은 끝났는가? 안 끝났다. 이것은 시작은 있었지만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오염된 땅을 땅에 묻었다. 집을 묻었고, 정원을 묻었고, 우물을 묻었고, 숲을 묻었다. 음악당과 도서관을 묻었고, 꽃과 나무 그리고 가축을 묻었다. 그들은 커다란 지층을 잘라 둘둘 말았다. 땅에 있던 485개 마을 중 85개를 매장했다. 하지만 묻는다고 해결될 일일까? 원자로는 신속하게 만들어진 석관으로 덮었다. 석관의 유효기간은 겨우 30년, 벌써 방사성 연무질이 흘러나온다. 80만명의 해체 작업자들에게 소련은 영웅 칭호와 훈장을 내렸지만, 피폭된 방사선 수치를 자랑하던 영웅들은 차례차례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오염 지역 거주민 210만명 중 70만명이 어린이였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새잎 펴냄

고준위 방사선은 사고 직후 일주일도 안 되어 유럽과 중국은 물론 북미까지 덮었다. 핵재앙 앞에서 국경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금 긋기 놀이인가. 그래서인지 저자는 후쿠시마 이후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는 과거에 대해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라고 말한다. 매장해도 숨쉬는 과거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다. 피폭된 사람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모습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설명할 수 없는 죽음’들이 전개되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뼈가 녹고, 구멍이 없는 자루 같은 아기, 코끼리 코가 달린 아이도 태어났다. 산모들은 아이를 낳은 게 왜 죄가 되냐고, 사랑이 왜 형벌이 되느냐고 절규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체르노빌-후쿠시마’는 달리 발음되지만 같은 불의 재앙이다. 지상의 어떤 생명체도 핵 재앙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다. 그러나 지극히 절망적인 일은 내 나라 현실이다. 이미 21기를 가진 우리나라는 원전 수명을 연장하려 들고, 더 지으려 하며, 그뿐 아니라 원전 기술 장사에 달떠 있다. 뒤늦게나마 일본은 반핵 목소리가 드세지고 있건만, 우리는 한가하게 후쿠시마가 기업 활동에 끼친 영향 따위나 분석한다. 나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내 나라의 둔감함과 무심함이 핵만큼이나 무섭다.

기자명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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