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현재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문 이사장임을 감안하면, '고인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최근 이 처럼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는 문 이사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아 지난 30년간 노 전 대통령과 동행했던 발자취를 기록한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15일 출간한다.

특히 문 이사장은 책 말미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자신의 인생과 현 상황에 대해 '운명'이라는 점을 언급, 향후 행보에 관심을 끌 만한 표현을 남겨 앞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즉 자신이 직접 야권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거나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유력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며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자의든 타의든, 노 전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서 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정치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도 읽힌다.

책 서문에서는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며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도 했다.

책에서는 참여정부 당시의 비화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이 소개됐다.

참여정부 조각(組閣) 당시와 관련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강금실 변호사에게 참여정부 첫 법무부 장관직을 맡기면서 '법무부의 비검찰화와 검찰 개혁'의 역할을 함께 맡겼던 것임을 밝혔다.

또 관용차에 대해 생소했던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첫 출근 때 차관과 기획실장을 자신의 차량으로 모시고(?) 출근하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언론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탁은 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는 점과 함께, 현 민주당 이용섭 의원을 인연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한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도 전했다.

당시 MBC 기자였던 박영선 의원을 자신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추천했지만 다른 인물이 발탁돼 아쉬웠다는 점도 털어놨다.

최근에도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가 결국 무산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문제도 거론했다. 문 이사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脫)정치, 정치중립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며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중립의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 때 못했던 배경이 있다.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며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면서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고민도 언급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데 대해, 문 이사장은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그 수사로 인해 남북관계 근간이 손상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며 "그리고 그 점에서 특검이 검찰수사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는 당시 미국 일각에서 네오콘을 중심으로 대북공격설 등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었음을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해서는 '100% 국익 기준으로 해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장사꾼 논리'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문 이사장은 "심지어 협상이 깨질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몇 개의 양보카드도 있었는데, 그걸 쓰지 않고도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참여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협상만큼은 꿀리지 않고 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부했다.

2003년 가을과 2006년 가을께 문성근씨와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각각 북한을 다녀온 일도 공개했다.

문씨는 남북관계에 대한 진정성을 알리는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고, 안 지사는 북측에서 먼저 정상회담에 대한 제안이 와 확인차 방문했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동영 의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사실 각별한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뭐든 도움을 주려 했다"며 '결국 탈당을 통보한 모양새가 된' 양측의 회동을 소개하면서 "왜 그렇게 서둘러서 대통령과의 관계를 파탄시켰는지 모를 일"이라고 의문을 품었다.

현 정부에 대해 일침도 가했다. 그는 "(쇠고기 파동) 촛불시위의 배후로 (이명박 정권이) 우리를 의심했다는 얘기 역시 한참 후에 알게 됐다"며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고 피해의식이었다"고 꼬집었다.

또 "뇌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라며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이사장은 "대선 국면과 맞물려 더욱 고전했던 일이 기자실 문제였다"며 "취지와 내용은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시기였다.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재고를 요청했다. 나중에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그 때 더 설득하지 못했던 게 후회됐다"고 언급했다.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져나올 당시에 대해서는 "그 시기 대통령은 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굉장히 야단을 치고 화를 내실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도저히 달관할 수 없는 일을 달관한 것처럼 보였다"고 회고했다.

검찰 조사 때의 상황과 관련해서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며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통령은 나에게 '내 자신만 정치적으로 단련되었지,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며 "노 대통령 서거 후 상속신고를 하면서 보니 부채가 재산보다 4억원 가량 더 많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수첩에 넣고 다닌다는 그는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머릿속에 유서를 담고 사셨으리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며 슬픔을 여전히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밝혔다.

문 이사장은 이어 "하물며 나는 더욱 그렇다. 기꺼이 끌어안고 남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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