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5기 1년을 돌아보는 인터뷰이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누구보다 지방자치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지방자치를 배웠고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그 작동 방식을 지켜봤다. 지난해에는 직접 도지사 선거에 나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6개월 만에 낙마했고, ‘이광재 그림자 선거’라고까지 불린 4·27 재·보선에서 또다시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재임 기간은 비록 반년에 불과했지만, ‘책상’과 ‘현장’을 모두 거친, 그것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경험한 보기 드문 인사다. 현역이 아니어서 거칠 것도 없다.
이 전 지사와의 인터뷰는 5월24일 서울 연세대 교정에서 진행됐다. 그는 다음 학기부터 이 대학에서 ‘정치흥망사’를 강의할 예정이다. 

 

ⓒ시사IN 백승기

 


누구보다 파란만장하게 지난 1년을 보냈다. 밖에서 본 지자체 단체장과 직접 경험한 단체장, 어떤 점에서 차이가 컸나?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도적인 한계가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지자체가 쓸 수 있는 공무원 인건비를 총액으로 설정했으면 그 안에서 재량껏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행정안전부가 ‘3급은 몇 명, 5급은 몇 명’ 식으로 정해놓으니 인원 한 명 늘리기도 쉽지 않다. 인구 비례로 따져 강원도는 ‘국’을 9개 이상 만들 수도 없다. 요즘 붐을 타는 ‘길’만 해도 9개 중앙 부처가 관련되어 있다. 문광부 길, 환경부 길, 국토해양부 길 등 똑같은 사업도 부처별로 예산이 나뉘어 있다. 그러니 규모 있는 사업이 안 되고 조각조각 난다. 사람·조직·재정·법률…. 모든 부문에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가 아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했고 국회의원도 해서 어느 정도 상황을 알았을 텐데.
청와대 시절 당시 행정자치부를 없애려고 했던 게 바로 인사권을 독립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그래서 차선으로 시도한 게 톱다운 방식으로 총액 인건비 제도를 도입해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거였는데, 실제로 지방정부에 가보니 그마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더라. 

중앙정부가 자율성만 주면 지방자치가 잘 굴러간다는 건가?
지방자치 내부의 개혁도 있어야 한다. 당장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을 없애야 한다. 지역이 정당의 패 가르기 싸움이 된다. 싸우지 않아도 될 작은 일을 가지고 너무 많이 싸운다. 기초의원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도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여서 더 힘든 점도 있었나?
종합부동산세를 없애 지방재정을 거덜 냈다. 나중에 보전해줄 테니 일단 집행하라고 채근해놓고 돈을 주지 않아 지자체 모두 너무나 어렵다.

지자체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시스템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기획에서 객관적인 성과를 점검해보려 했지만 마땅한 틀이 없더라.
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계량화되지만 행정행위는 계량화되지 않는다. 계량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돈 쓰는 전반적 구조에서 심사와 분석이 매우 취약하다. 지방재정법에 보면 30억원 이상은 심사 대상이고 이것을 도(道)에서 심사하게 돼 있는데, 담당 공무원이 5~10명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만 예산을 따지지, 예산 집행 후에는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낭비되는 예산이 많다. 전국 지자체가 가진 부채가 어마어마한데 그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행안부도 통제만 하지 실제 내용은 잘 모르더라. 지방자치를 선거로 하다보니 관선(임명직)일 때는 상상도 못하던 환경파괴 건축허가를 내주기도 한다. 이런 걸 한눈에 파악하려면 단체장이 곳곳에서 벌이는 사업들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지방정부가 돈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체 국가 예산의 55%를 지방정부가 쓰지만 많은 돈이 표 때문에 분산된다. 

 

 

 

 

ⓒ연합뉴스2010년 8월29일 열린 민주당 광역자치단체장 정책간담회 모습. 맨 왼쪽이 당시 이광재 강원도지사.

 


그동안 아예 평가 시도가 없었나?
청와대 시절 평가 툴을 만들어 1등부터 247등까지 광역과 기초단체장 순위를 매겨 공개하자는 시도를 했다. 그래서 낮은 평가를 받은 지역은 예산을 삭감하고, 삭감한 예산을 높은 평가를 받은 쪽에 얹어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대와 저항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독립적인 제도를 만들면 된다. 외부의 대형 회계법인과 함께 철저하게 예산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장·차관 출신들이 서울에만 살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들의 국제적 경험, 국가 운영의 경험이 전수되면 전체적으로 지방자치의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

친노 인사 사이에 그런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 출마한 고위직 출신은 드물었다.
지방에서는 그 지역 고교 출신자를 선호한다. 그런데 중앙정부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 많다보니 선거의 장벽에 걸리곤 한다. 인재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가 아니어도 인재들을 활용할 방법은 많다. 강원도에서 서민금융을 위해 신용보증재단을 설립할 때 각 시·군 농협 지부장을 하고 퇴직한 분들을 채용했다. 신용보증재단이 하는 핵심적인 일이 대출 심사를 하는 건데, 농협에서 오래 일한 사람만큼 서민 사정에 밝은 분들이 어디 있겠나. 현직에 있을 때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던 분들이 2000만원 연봉에도 매우 보람되게 생각하더라. ‘2라운드 클럽’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인재들을 활용하려고 한다.

6·2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등 생활밀착형 공약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선거가 끝나고 도정 운영 과정에서도 그런 요구가 이어졌나?
이제 정치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과거에는 민주화 등 선악의 가치 문제를 다루는 전선이 있었는데 이것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생활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이전에는 정치인들이 시혜성 정책을 남발했다면, 이제는 유권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말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당선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의민주주의에 위기가 오고 직접민주주의로 진화하는 단계라고 본다. 국민경선 도입이라든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가 크다. 국민의 생각을 확산시킬 충분한 IT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내가 정책 소비자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눈에 바로 보이지만, 생활밀착형 공약은 성과가 무형이거나 더뎌서 선출직으로서는 조바심이 생길 법도 한데.
지사 시절 ‘군 재정의 10%는 무조건 교육에 투자한다’라는 조례를 통과시킨 바 있다. 그래선지 강원도 고교들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다. 방학 기간에 비는 연세대 기숙사에 강원도 학생들을 초청해 실험실, 수영장 등을 이용하게 했더니 학생들의 성취동기가 높아지더라. 이제 돈의 물꼬를 틀어 길에서 일자리, 교육, 복지로 집중해야 한다. 내가 식당·서당·경로당이라는 3당 정책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강원도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려는 노력 때문이다.

최문순 후보의 당선에도 그런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선거 과정에서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최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을 하면서 내가 여태까지 해온 걸 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동계올림픽 유치가 실제 강원도에 도움이 되느냐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형적인 업적형 정책 아닌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서 성공한 도시도 있고, 실패한 도시도 있다. 그래서 나는 유치도 중요하지만, 유치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강원도가 아시아의 스위스가 되어야 한다. 스키를 타다 30분만 가면 바다를 만나는 곳이 흔하지 않다. 그래서 정부에 특별법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강남~평창을 잇는 철도, 외국인학교와 병원, 면세점을 짓고, 외국인이 10억원짜리 이상 빌라를 사면 한국 영주권을 주자고 제안했다. 휴양시설과 의료 부문을 특화하자는 것이다. 중국인 중에 바다를 못 보고 사는 사람이 60%다. 중국에 가면 “강원도에 작은 장가계(설악산), 작은 계림(영월 동강), 해남도(동해)가 다 있다”라고 홍보한다. 평창에 동양 최대의 휴양지를 만들면 올림픽 이후에도 꾸준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10년 뒤면 본격적인 국민연금의 시대가 열릴 텐데, 연금생활자들이 서울을 떠나 중소도시로 옮길 경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 병원, 리조트, 자녀들과의 거리다. 그러면 상당수가 강원도로 오지 않겠나? 이처럼 정책 하나하나를 구상할 때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연결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등 이른바 ‘노무현 키드’ 단체장과는 자주 모였나?
모임을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각자 다양한 실험을 해서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만한 사례를 만들자는 데는 공감을 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예로 들자. 서울과 농촌 마을과의 자매결연을 통해 농민은 안정적 판로를 개척하고, 도시 학생들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다. 강원도 아이들의 국어 성적이 전국 최고다. 나는 그 이유를 자연과 함께 자라서라고 생각한다. 도시 아이들이 갖지 못한 이런 부분을 무상급식을 시행하면서 함께 교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 성북과 강원도 철원, 서울 구로와 강원도 평창은 이미 자매결연을 했다.

내년에 총선·대선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의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질까?
서민의 삶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파이 키운다고 서민이 부자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국민이 절감했다. 일자리·교육·복지, 이 세 가지가 핵심 화두다.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부자 위주 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손학규 지지’의 뜻을 밝힌 이유가 뭔가?
김대중, 노무현 모두 단일화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과연 내년 선거에서 진보의 단독 집권이 가능할까? 6·25와 독재정권을 거쳐온 세대는 좌파라는 단어에 아직 반감이 있다. 영·호남 지역구도도 상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의 단독 집권은 이번보다는 차차기(2017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은 중도와 진보의 연합이 한 번 더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손학규·문재인 같은 중도 성향 인사들이 의미 있는 위치에 있다. 문재인 이사장도 선거에 나와서 중도를 강화시켜야 한다.

문재인 이사장이 중도인가?
인권변호사를 해서 다들 진보로 아는데, 말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걸 겪어보니 중도 성향에 가깝더라. 분명한 것은 복지 부분에서는 진보의 정책이 많이 수용될 수밖에 없다. 중도인 문재인·손학규, 그리고 진보 쪽에서 누군가가 나와 힘을 합해야 한다.

진보 후보라면 누구를 의미하는가?
유시민 (참여당) 대표가 진보 쪽에 속하지 않을까? (민노당) 이정희 대표도 국민 속에서 좋은 이미지로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일찍 세웠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런 훈련을 거쳐야 자기 목소리가 분명해지고, 이런 사람들이 경선을 거쳐야 대한민국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세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분들은 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국민에게 공개해주기를 바란다. 출사의 명분이 뚜렷해야 국민이 지지를 한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야당이 다수당이 될 것 같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나, 안희정, 김두관이 당선될 줄 모르지 않았나. 국민은 굉장히 무섭고 똑똑하다. 야권 단일화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을 줄 누가 알았나.

야권 단일화나 통합의 길이 지난해 보인다.
방식을 어떻게 할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민주당도 마음을 좀 더 넉넉히 가질 필요가 있고, 진보 진영 역시 민주당을 너무 폄하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존재하는 현실이고, 과거와 달리 호남당도 아니다. 충남·북과 강원, 경남도지사 당선으로 전국적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호남에 마땅한 대선 주자도 없고, 영남도 박근혜 전 대표를 제외하면 대선 주자가 없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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