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은 특이하다. 보고 나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자신이 받은 정서적 임팩트를 누군가와 얘기하고 공유하고 싶어진다. 이런 예능은 없었다. 자기가 받은 감정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5월18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나는 가수다〉(〈나가수〉)에 대한 총평이다.

애초에 방송 전부터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자기 세계를 가진 음악 예술인들까지 경쟁 구도에 밀어넣는다는 비판이 거셌다. “몇 가지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경쟁 구도 자체에 찬성할 수는 없다”(공연 연출가 탁현민씨)라는 의견처럼. 가수 김건모가 재도전을 결정할 때 비난이 절정에 달했다.

휴지기를 거친 후 ‘시즌2’ 방송이 거듭되면서 처음 비판 여론에 머물지 않고 김어준씨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요컨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나가수〉 효과가 음원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MBC와 〈나가수〉 음원 공급 독점 계약을 한 로엔엔터테인먼트는 “〈나가수〉의 영향으로 매출이나 다운로드 건수, 스트리밍 재생 횟수, 사이트 방문율이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SK텔레콤이 대주주인 로엔은 4월 이후 주가가 31% 가까이 상승하기도 했다. 


 

음악 순위를 매기는 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 3월1일부터 5월7일까지 〈나가수〉와 연관된 음원은 모두 34곡으로 다운로드 1454만 건, 스트리밍 1억662만 건을 기록했다. 가온차트는 국내 6개 주요 음악 서비스 사업자와 이동통신사의 온라인 매출 데이터 등을 집계해 순위로 발표한다. 김범수가 열창한 ‘제발’(다운로드 175만 건, 스트리밍 1801만 건)과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다운로드 101만 건, 스트리밍 954만 건)가 다운로드 100만 건을 넘어섰다. 노래방 순위 변화는 더 두드러진다. 순위가 이렇다. 1위 임재범의 ‘너를 위해’, 2위 김범수의 ‘제발’, 8위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 9위 윤도현(YB)의 ‘나 항상 그대를’.

최근 온라인 음악 사이트 순위 상위권은 〈나가수〉가 반, 아이돌이 반을 석권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매번 방송을 한 직후 〈나가수〉 음원이 차트 상위권을 휩쓰는 현상. 새로 음원을 제작해 내놓은 기존 제작자 처지에서는 반길 수만은 없다. 애써 만든 신작의 노출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가수〉 음원은 기존 음원 차트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가수〉 음원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는지는 분명치 않다. 국내 음원 사이트들이 대부분 수십 곡을 묶어 다운로드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월 단위 정액제로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결합 서비스를 실시하기 때문에 정산 과정이 복잡하다. 7월이나 되어야 1차 정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가수〉 효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은 분명하다. 최성환 유화증권 연구원은 최근 음원 시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나가수〉가 올해 20회 정도 방송되고, 지금과 같은 반응을 얻는다면 전체 음악 시장에서 500억원 이상 음원 매출 효과를 기록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따지고 보면 〈나가수〉의 시청률은 아직 ‘대박’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5월15일 시청률을 보자. TNmS의 자료에 따르면, KBS2의 〈해피선데이〉(1박2일)가 전국 시청률 15.9%를 기록했을 때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의 수치는 10.1%였다. SBS의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의 9.1%에 조금 앞설 뿐이다. 그 주에 방송된 또 다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시청률 18.8%에 훨씬 못 미친다(58~59쪽 기사 참조). 하지만 〈나가수〉는 시청률 이상으로 훨씬 더 연예 이슈의 블랙홀이 되었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나가수〉 현상’을 ‘음악과 예능이 결합한,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으로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나가수〉는 대중문화의 주도권을 쥔 예능 프로그램의 변형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가요 시장은 걸 그룹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의 격전지였다. 아이돌 그룹은 ‘고비용 고위험’ 구조의 문화 상품이다. 대형 기획사가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고 성장시키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비슷한 유형의 음악풍을 지닌 수많은 다른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하는 게 쉽지 않아 그만큼 위험도가 크다. “아이돌은 음악 그 자체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며 기획된다.”

음악 시장이 이렇게 왜곡된 상황에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은 아이돌 그룹의 단짝 구실을 했다. 몇 년째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대중의 피로도가 커지면서, 새로운 프로그램 형식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가수〉는 음악과 예능이 결합된 새로운 플랫폼으로 나타났다. 종전에 예능 코드와 맞지 않았던 가수들이 아이돌 그룹의 대체재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비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김작가씨는 말했다.

가창력만으로 하는 가수 평가 부적절해

국내 음악 시장에서 음원 부문은 전체 음악 지형을 보여주기보다는 특정 장르와 아이돌을 과잉 대표하는 방식으로 재편된 상태였다. 업계 표현을 빌리면 ‘보이는 손’이 작용하는 시장이었다. 팬클럽이 여러 개 ID를 동원해 브라우저를 20여 개씩 띄우며 스트리밍 수를 늘려 특정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차트 10위권 내로 밀어올리는 방식 등이 통용됐다.

순위 진입 이후 노래는 ‘지금 유행하는 최신곡’을 찾는 소극적 소비자와 만나게 된다. 상대적으로 음악적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적극적 음악 소비층은 음원보다는 음반과 공연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페스티벌 시장의 상업적 가능성이 열린 것이 하나의 발판이 되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접하기 힘든 밴드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공연 예매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국카스텐’ ‘브로콜리너마저’ 등이 대표적이다.


ⓒ뉴시스올해 초 불었던 ‘세시봉’(위) 열풍은 아날로그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나가수〉는 음악적 개성에 무관심한 이들로 하여금 음악과 가수에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여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음향에 신경을 쓰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탁현민씨는 “차별성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별 가수에게 각각 콘솔과 같은 음향 장비의 세팅 값을 맞추고 세션을 배치하는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리얼리티 쇼가 갖고 있는 ‘양날의 칼’에 대해 그는 지적한다. 음악의 한 요소에 불과한 가창력만 두고 음악 전반을 평가한다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열린 음악회〉가 공연 문화에 악영향을 끼친 것과 비슷하다. 종합선물 세트처럼 당장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열린 음악회〉는 결과적으로 공연 문화를 하향 평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가수〉도 자칫 방송이 장악한 또 하나의 ‘라이브 가수’ 검증 시스템이 되는 것은 아닌가.”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한국 대중음악 현실에서 ‘힘이 약한’ 상식이었다. 음반·음원·공연이라는 음악 시장의 세 축은 이미 기형적으로 틀어져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나가수〉는 새 형식을 동원해 대중의 관심을 ‘노래’로 돌려놓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음악적 다양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올해 초 불었던 ‘세시봉’ 열풍은 추억을 현재로 소환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놀러와〉 시간대에 유재석과 김원희의 사회로 세시봉이 호출되었다. 아날로그 음악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지만, 음악계의 판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추억 마케팅’에 머물렀다. 대중음악 평론가 나도원씨는 “지금 〈나가수〉를 통해 가수를 재발견했다는 말이 나온다. 2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온 사람을 두고 마치 그동안 없었던 것마냥. 그래서 ‘〈나가수〉 현상’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그동안 방송은 무엇을 했나”라고 말했다. 〈수요예술무대〉 〈라라라〉 등 음악 프로그램은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사라져갔다.

〈나가수〉에 이어 KBS는 6월 초 ‘아이돌판 나가수’ 〈불후의 명곡2〉를 시작한다. 음악과 예능을 결합한 ‘신예능’이 어떻게 진화해갈지 관찰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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