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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정부가 자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금만 바꿔도 우리 아이들이 품격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안다. 선택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더 잘 해나갈 수 있다.”

연설은 같은 말이라도 그 현실 문맥이 중요하다.  듣기에 따라 얼핏 평범한 것 같지만, 진지한 목소리와 명쾌한 어조로 뿜어내는 이 연설에 사람들은 순간 열광했다. ‘단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약간만 바뀌어도 (just a slight change in priorities)’ 세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들으면서 눈앞에 놓인 거대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지 무력감마저 느끼던 이들이 “그래, 조금만 밀고 나가도 변화는 가능해”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품격 있는 삶(decent life)’이라는 말에 정치의 언어가 격을 달리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격조 있고 기품이 담겨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decent’라는 단어는 미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실종된 처지였다. 클린턴 정권 시기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라는 담론을 거쳐, ‘테러와의 전쟁(war against
 terror)’ 구호가 대세를 장악한 부시 정권의 현실에서 ‘격조와 품격 있는 미국’이라는 발상은 낯설기조차 했다. 예상 밖으로 이 말들은 사람들 가슴에 신선하게 꽂혔다. 까마득히 잊었던 꿈과 각도를 달리한 정치적 상상력을 미국인은 여기에서 새삼 발견했던 것이다. 4년 전인 2004년 오바마의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은 그렇게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 들어갔다.

2004년 미국 선거는 아무래도 또다시 공화당이 대세를 쥐게 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민주당은 전의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부시와 맞설 대선 후보도 유권자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의 대선 주자 출정식이라는 의미를 띠기도 했던 그해 7월의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그러나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 스타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영된 이날 현장을 통해 미국인 상당수가 다소 졸린 듯한 눈매와 재미없는 말투로 일관한 대선 후보자 존 케리보다는, 기조연설 하나로 일거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버락 오바마에게 매료되었다. 그는 당시 이제 막 일리노이 상원의원에 도전한 정치 풋내기일 뿐이었다. 그리고 4년 뒤 2008년,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 첫 접전지인 아이오와에서 쟁쟁한 워싱턴 주류의 기세를 꺾는 돌풍의 주역이 된다.

이어 벌어진 뉴햄프셔 경선에서 힐러리에게 패배하지만, 아직 초반전인 이번 경선의 긴 과정을 마치고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든 안 되든 언젠가는 반드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론을 다는 이가 없을 정도로 오바마는 미래형 지도자감으로 우뚝 섰다.

1961년생이니까 올해 47세가 되는 오바마는 1983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뉴욕의 한 기업에 잠시 취직했다. 이어 시카고에 가서 빈민가 지역 공동체 조직가로 활동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의 주택 문제를 비롯해서 이들의 곤경에 처한 삶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운동의 경험을 착실하게 쌓아나간다. 이 시기의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향을 받은 흑인 전도사의 지도 아래 시카고 외곽 지대의 빈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운동을 조직해나갔던 10대 시절의 힐러리와 적잖이 닮았다. 이후 법률가로 성장한 것도 외견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세대 차이를 넘어 민주당의 진보성을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다.

흑인 오바마, 미국이 설치한 장애물 뛰어넘어

시카고에서 활동한 이후 오바마는 더 전문적인 위치에서 미국의 빈민가 현실에 다가가야 한다고 느껴 1988년 하버드 대학 로스쿨에 진학하고, 2년 뒤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이 된다. 1990년 2월6일자 뉴욕 타임스는 ‘하버드 대학 104년 역사에서 최초의 흑인 편집장’이라며 그의 취임을 예사롭지 않게 주목했다.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이 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주류 최고의 집단에 속하는 동시에, 그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사회적 존경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AP Photo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월8일 뉴햄프셔 예비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1991년 하버드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오바마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졸업생 대다수가 선택하는 뉴욕의 대규모 법률회사나 워싱턴의 정치 성향이 강한 법조계로 가지 않는다. 여기서 워싱턴의 100대 변호사로 선망의 대상이 된 힐러리의 삶과 그의 진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바마는 과거 그가 지역 활동가로 일했던 시카고로 돌아가, 각종 차별 문제 해결에 온 힘을 기울이며 유권자 운동에 나서고 인권변호사로 뿌리를 내려간다. 이와 함께 그는 시카고 로스쿨에서 헌법 강의를 하는 등 이론과 현실 두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사회활동가의 면모를 가진 변호사이자 법률학자로서 오바마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는 1996년에 찾아온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선출된 것이다. 199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2000년 민주당 하원의원 경선에서는 실패한다. 오바마는 다시 2002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2년 뒤 연방 하원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상원의원 입성에 성공한다. 일리노이 주 지방 정치인에서 전국 단위 정치가로 크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빠른 성장이었다.

주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오바마는 열악한 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정치 관련 윤리법, 빈민을 위한 세금 혜택 법안, 육아 재정 확대, 사회보장제도의 개선,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죄자 취조 과정의 비디오 녹화 필수화 입법 등 중요한 성취를 이룬다. 2004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오바마는 이민자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민법 개정 작업에 힘을 쏟고, 대인지뢰를 포함한 재래식 무기통제 입법에도 진력했다.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단체 모두의 재정투명도를 확인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재정 부정의 소지를 최소화한 것이나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를 순방하면서 국제 갈등의 현장을 경험한 것도 지도자로 커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진로를 주목하게 한 것은 이라크 전쟁을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동시에,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을 제안하고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어나가는 ‘변화가 없으면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노선을 명확히 한 대목이었다. 존 케리나 힐러리가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태도를
교묘하게 바꾸거나 모호하게 대응한 것과는 차이가 나는 자세였다.

이런 그가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이후, 6개월간 모은 정치헌금이 5800만 달러. 최고 기록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200달러 이하의 소액 기부가 1640만 달러나 되어 어떤 후보보다 소액 기부자가 많았다. 아직 경선에 나서려면 한참 멀었던 시기인 2007년 4월, 미국 연방정부는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전례 없이 그에게 비밀경호를 붙일 정도로 그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렇게 화려한 입지를 굳힌 오바마에게도 그늘이 있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캔자스 출신 백인이다. 인종적으로 복잡한 배경을 가진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모의 사이가 멀어지자 인도네시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다. 10대 시절 정체성 혼란과 고민으로 술과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손을 대기도 한 그는 그래서 주변부 인생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케냐 출신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랍계 이미지를 주는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으로 해서 그가 겪은 상처와 고통도 컸다. 9·11 테러 이후 아랍계에 대한 적대감이 한창 높아졌을 때 그를 아끼는 이들은 그에게 이름을 바꿀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나가면서 미국의 꿈을 이루는 것이 모두를 진실에 눈뜨게 하는 길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바마의 저서 〈희망의 담대함(Audacity of Hope)〉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의 기본 철학과 태도는 이렇게 고독하고 힘들었던 성장 과정과 그의 정치적 용기의 축적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교단인 UCC(Uni ted Church of Christ)에 소속된 교인이다. 그래서 그의 신앙고백은 실존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정의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에 민감한 그의 종교적 자세는, 힘과 부를 추구하는 부시를 비롯한 미국 보수 기독교의 근본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에게 희망은 정의로운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한 힘이다. ‘패권 국가 아메리카’가 아니라 ‘지도력으로 존경받는 미국’이 그가 제시하는 미국의 진로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대로 되기만 한다면 이 거대한 제국의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인류는 매우 다른 경로로 진보할 수 있다. ‘우선순위만 약간 달라져도’ 세상은 변한다.

실제로,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아랍적 요소가 약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미국 본토가 아닌 하와이 출신이라는 점이 미국 주류 사회에서 지도자의 위상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을 그는 진지하고도 맹렬하게 뚫고 나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역사적으로 설치한 장애물을 뛰어넘는 한편,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련한 기회를 자기 자산으로 삼는 데 성공한 것이다.

ⓒAP Photo오바마는 꿈과 이상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지도자로 만들어왔다. 위는 오바마 가족.
정치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진실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입지전적 출세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꿈과 이상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스스로에게 철저하게 부과해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말에는 철학이 있고 가치 논쟁이 담겨 있다. 그의 주장에는 사회 약자에 대한 지극한 아픔과 고통받는 인간을 향한 영혼의 온기가 스며 있다. 그래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는 사람은 논리와 감성이 함께 작동하는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희망의 출구가 단지 경제성장이나 정책 논쟁 또는 국제 전략의 선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픔과 갈망을 자신의 정치적 육체에 체화하는 지도자에게서 비롯할 수 있음을 미국인들은 지금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부시 8년 집권의 미국은 돈과 권력 지상주의로 천박해졌다. 메마르고 강퍅해졌으며 인간을 향한 배려와 생명과 정의에 대한 사고는 마비되었다. 마침 미국 체류 중에, 아이오와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를 보고 미국인이 뜨겁게 열광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정의·가치·품격·사랑·평화·용기…. 이런 단어들이 정치의 담론이 되고, 정치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라고 외치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유쾌한 희망을 발견한 미국인의 기쁨을 본다.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메리카 제국’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오바마는 그런 미국인의 진심을 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모순과 약점이 있을 터이다. 그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나가야 할 한 인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대본영 미국에서,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수준의 논의를 넘어 삶의 품격과 희망을 말하는 것은 분명히 진화이다. ‘오바마 돌풍’이라는 정치 승패 여부만 보는 한국 언론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가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신자유주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실종된 한국 정치에 오마바의 꿈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다 건너 경마 경기의 관전에 머무른다.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이기는가 아닌가보다 더 중요한 주제를 놓치는 셈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용기 있게 선택하자는 오바마의 도전 앞에서, 이명박 정권을 맞이하게 될 우리는 지금 퇴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화하는 것인지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연일 쏟아지는 미국 대선 보도는 진정한 가치를 잃는다.

오바마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본다면? 약간의 변화라도 주면 세상이 달라질 우선순위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성이 빠진 경제주의’가 가져올 재앙을 생각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잊은 자의 모습이다. 이천 냉동고 공사 현장의 화재는 바로 그렇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친 결과가 불러온 비극이다.

우리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을까? 일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 비로소 이렇게 묻는다면 서로를 패자로 만들 뿐인 상처투성이의 책임 논란에만 갇힐 것이다. 이 질문은 빠르면 빠를수록 모두에게 좋다.

기자명 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 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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