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수1월5일 마이클 조 총격 사건 현장에서 추모 행사(위)가 열려 무고하게 죽은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2007년 12월31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작은 베드타운인 라하브라 시에서 25세 한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건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이렇다.이날 오후 2시께 한 청년이 상가 건물에 낙서를 한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관 두 명이 현장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가 주차장에서 용의자와 비슷한 용모의 청년을 발견하고 정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 청년이 불응하자 경찰은 권총을 발사했다. 그는 상가 내 슈퍼마켓 앞에서 쓰러졌고, 곧 응급구조 요원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죽은 청년의 이름은 마이클 조, 한국인 이민자 2세였다.

라하브라 시경은 3일 국장이 기자회견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용의자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낀 경찰관들의 정당방위였다”라고 해명했으나, 사건 현장에서 수거된 CCTV 자료에는 사망자가 경찰관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한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고인이 졸업한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동문을 비롯한 주변 친지는, 조씨가 당시 상가와 맞붙은 주유소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던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무기’라고 지적한 것은 차량 정비용 도구였다.

숨진 조씨는 척추신경에 악성종양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스스로 신체를 추스르기도 힘겨운 사람이 경찰관을 위협했다는 설명을 유가족은 경찰 측의 군색한 변명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수술이 불가능한 장애를 가진 애였어요. 그걸 안고도 꿈을 이루겠다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는데….” 숨진 조씨의 아버지 조성만씨는 4일 부슬비가 내리던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진상 파악을 위해 한인 동포 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성만씨는 이번 사건에서 세 가지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첫째는 총격 행위가 경찰 발표대로 ‘정당방위’로 합리화될 수 없다는 점. 숨진 아들이 경찰을 위협했다는 정황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과잉 방어가 분명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두 번째는 경찰관의 자질 부족. 그는 “침착성 없고 경험도 부족한, 훈련이 덜된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라하브라 시경 국장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현장 출동 경찰관들은 각각 경력 10년, 20년차의 베테랑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폭력 경찰에 대응하자' 캠페인 큰 호응

조씨는 마지막으로 인종차별 의혹을 꺼냈다. 그는 “소수민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용한 사건”이라며,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건 전반에 걸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현재 지역 검찰이 사건 현장 출동 경찰관들의 직무상 과실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조씨는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동포 사회의 전폭 지원을 호소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발 벗고 나서주시면 좋겠습니다. 한민족은 보이지 않는 끈끈한 민족성, 막걸리 같은 깊은 연대감 있잖아요. 다행히 사건 직후부터 아들이 친구들을 비롯한 젊은 학생, 청년이 힘을 합해서 도와주려는 게 참 고맙습니다. 이 일이 소수민족 권익 신장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종수한인 동포 2세인 마이클 조 씨가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라하브라 시 시경국장(맨 왼쪽)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내 아들은 죽었지만, 미국을 더 공명정대한 사회로 만드는 밀알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소송 계획을 밝혔다. 그는 경찰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대로 ‘조씨가 무기를 들고 경관들을 위협했다’는 설명을 믿을 수 없다면서, 당국의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법정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숨진 조씨의 친형이 변호사 선임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조성만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 아들이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를 공개했다. 숨진 아들이 누구와 연락하고 무슨 일로 그곳에서 경찰과 맞딱뜨려야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 유류품 가운데서 회수한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 중심 부분을 총탄이 관통한 탓에 자료 복원이 불가능하다.

지난 1977년 미국 이민 이후 함께 가꿔오던 조씨 가족의 꿈은 총탄 맞은 휴대전화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조성만씨는 “그 아이가 곧 예일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는데, 뜻을 펴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울먹였다.

조씨 가족은 이민 이후 줄곧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작은 한인교회에 다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숨진 조씨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조성만씨는 “미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지금까지 발전한 나라인데, 요즘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누구를 무작정 공격하고, 이런 게 기독교 정신은 아니거든요. 기독교는 무저항의 종교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스스로를 희생시키신 것처럼요.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부인 조홍자씨는 아들이 죽던 날부터 갑자기 심한 복통이 생겨 거동이 불편할 지경이라고 했다. “아들이 아마 배에 총탄을 많이 맞아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조성만씨는 말했다.

조씨 사건 외에도 최근 미국에서는 경찰관이 민간인을 총격해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잇따랐다. 조씨 사망 사건 전날에는 라하브라 시와 같은 행정구역인 오렌지카운티 관내 남부 소도시에서 히스패닉 청년이 보완관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새해 들어서도 지난 4일 로스앤젤레스 시내 서쪽 번화가에서 한 운전자가 로스앤젤레스 시경(LAPD) 소속 경찰관의 총격으로 숨졌다.

한인 동포 사회를 비롯한 유색인종· 소수계 커뮤니티는 조씨 사망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연대 움직임에 돌입했다. 조씨의 희생을 계기로 무리한 경찰력 행사를 멈추게 하자는 운동이 움트고 있다. 5일 인근 지역사회 관계자 등 120여 명이 조씨 사망 현장에서 진행한 추모행사에서는 캐나다에 근거를 둔 단체까지 찾아와 ‘경찰 폭력에 대항하자’는 서명 캠페인(http://uapv.resist.ca/)을 벌여 높은 호응을 얻었다.

기자명 로스앤젤레스=오종수 (현지 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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