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은 3등이었다. 민주당 지도부와 이광재 전 지사는 일찌감치 ‘영동 후보 필승론’을 이번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의 테마로 잡았다. 권오규 전 부총리가 1순위, 김대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2순위였다. 두 사람 모두 영동 최대 도시인 강릉 출신이다. 춘천 출신인 최문순이 낄 자리는 없었다. 영동이 보수 성향이 강하다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영동 인물’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하다. 원주·춘천 등 영서 지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영동의 표심을 모아낼 후보를 세우고, 여기에다 원래 해볼 만한 지역인 영서에서 우세를 잡으면 승리가 가능하다는 셈법이었다.

강원도지사 후보를 세우기 위해 이광재 전 지사 측은 권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을 수차례 접촉했다. 이 전 지사의 최측근은 당시 면담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막판에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선거는 우리(이광재 팀)가 다 해주겠다. 후보는 딱 하나 텔레비전 토론 준비만 해라. 그건 어차피 인사청문회 준비하며 연습해본 것 아니냐.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안 움직이더라. 관료 출신들이 보장 없는 싸움은 안 하는 건 아무튼 알아줘야 한다.”

 

ⓒ시사IN 백승기최문순 강원도지사(가운데)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왼쪽)처럼 인물과 영동을 중요시하는 선거를 치렀다.

 

 


처음에 엄기영과의 격차 20% 포인트

1월27일 이광재 전 지사가 지사직을 박탈당하며 강원도지사 보궐선거가 확정되자마자 언론은 ‘최문순 대 엄기영’ 대결 구도를 기사화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건 그저 언론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최문순 당시 의원은 당 지도부가 영동 후보론에 집착하며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사실상 마음을 접기까지 했다. 하지만 3월23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출마를 권했다. 영동 후보 카드 두 장이 모두 무산된 것이 확실해진 시점이었다. 이틀 뒤면 최 의원이 주소지 등록 시한을 넘겨 출마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막판에 몰려 급하게 뽑아든 카드가 ‘3순위’ 최문순이었던 셈이다.

기분이 좋을 리 없는 모양새였지만 최 의원은 즉석에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다못해 다른 예비 후보를 정리해달라는 조건을 달 수도 있었다. 내가 이틀만 끌면 아예 출마가 불가능하니 대표가 내 요구를 안 받을 수 없었지. 하지만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이틀 뒤인 3월25일 그는 출마 선언을 하고 ‘최 의원’에서 ‘최 후보’가 된다.

최문순은 2등이었다. ‘최문순 대 엄기영’ 구도가 잡혔을 때, 지지율 격차는 20% 포인트를 넘나들었다.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고 선거전이 시작되어서도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MBC 사장 출신의 맞대결이라는 중앙 언론의 ‘대등한 판짜기’와 실제 강원도민의 체감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엄기영 후보와의 인지도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최 후보를 수행한 보좌관은 “처음에는 먼저 다가가기 쑥스러울 정도였다. 유권자가 아예 얼굴을 못 알아봤다. 텔레비전 토론 이후에야 반응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강원도가 전국 단위의 주목을 받는 ‘큰 선거’가 되면 인지도 열세는 비교적 쉽게 극복된다. 처음에는 그런 듯했다. 하지만 3월30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분당을 출마를 선언하면서 무게중심은 돌연 분당으로 쏠렸다. 미디어는 물론 민주당의 스타급 의원과 선거전략가도 대거 분당으로 향했다. 최대 승부처라던 강원도지사 선거는 졸지에 ‘변방’이 되었다. 민주당의 우선순위에서도, 여론의 관심에서도 최문순은 2등이었다.

강원도 선거의 키는 ‘영동’이 쥐고 있어

당내에서조차 3등으로 출발해 선거 내내 2등이던 그가 어떻게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해 ‘최 지사’가 될 수 있었을까. 전 세대에 팽배한 이광재 동정론과, 30~40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MB 여론은 대전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이광재 전 지사도 ‘반MB’라는 말은 거의 꺼내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공히 ‘다른 지역 정당’으로 보고, 정당 충성도보다 인물 본위 투표 경향이 강한 강원도의 특성을 고려했다.

이광재 전 지사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인물, 둘째는 영동. 노무현 정부 당시 권력 핵심에 있을 때부터 지역에 공을 들인 이 전 지사는 “우리 지역에서도 대선 주자를 내보자”라는 강원도민의 염원을 자극해 보수 성향이 강한 영동 공략에도 성공했다. 이 전 지사는 영동 최대 도시인 강릉에서 52%를 얻었는데, 강릉에서 한나라당 후보보다 많이 득표한 민주당 계열 후보는 이 전 지사가 유일하다.

최 지사에게도 이 ‘인물과 영동’이라는 공식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둘 있었다. 다섯 차례 텔레비전 토론을 거치며 최 지사는 엄 후보와의 인지도 차이를 좁히고, 인물 경쟁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토론이 나간 다음 날이면 거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게 체감이 될 정도였단다. 4월18일 KBS가 주최한 텔레비전 토론이 시청률 17.5%를 기록하는 등, 두 후보의 토론은 큰 관심을 끌었다.

4월22일 강릉에서 터진 한나라당 불법 전화 선거운동 사건은 영동 공략의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멋모르고 용돈벌이에 나선 평범한 주부들이 담요로 얼굴을 가린 채 줄줄이 연행되는 장면이 미디어를 도배했다. 엄기영 후보는 “최 후보에게 화가 나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다”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노골적으로 발을 뺐다.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인 중소 도시 주민들의 눈에, 이웃집 주부를 연행되게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치명타였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도 비공개 여론조사를 계속 수행하던 한 여론조사 업체 대표는 사건 사흘 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동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줌마 커뮤니티’가 완전히 돌아앉았다. 영서는 진작 역전했으니, 이대로 가면 정말로 대형 사고가 난다.” 결국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이광재 선거’와 ‘최문순 선거’를 모두 치른 강원도의 한 선거통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결국 강원도 선거의 키는 영동이 쥐고 있다. 영동 후보론이 끈질기게 제기된 이유도 그래서다. 보수적인 영동을 공략하려면 성향이나 연고 둘 중 하나라도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최 후보는 둘 다 없었다. 그런데 하필 강릉에서 사건이 터져주었다. 그렇게 영동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쉽지 않았다.”

20쪽 〈표〉를 보자. 최 지사는 영동의 3대 도시인 강릉·동해·속초에서 만만찮은 선전을 펼쳤다. 강릉에서 3637표를 뒤졌지만, 동해와 속초에서는 근소하나마 엄 후보를 앞섰다. 속초는 지난해 영동 공략에 성공했던 이광재 전 지사마저 득표에서 뒤졌던 몇 안 되는 도시다. 우여곡절이 길었고 운도 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영동 공략이라는 민주당의 기본 전략이 달성된 셈이다.

일반 선거와 달리 보궐선거 당선자에게는 인수위를 꾸리고 도정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최 지사는 당선 이튿날인 4월28일 곧바로 취임식을 갖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지사 업무를 시작했다. 도정에 대한 준비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최 지사의 측근조차도 부인하지 않는다. 선거 준비 기간도 짧았고, 선거 이후에 대비할 시간은 더욱 부족했다. 인수위를 꾸리고 차분히 4년을 준비했던 다른 광역단체장에 비하면, 일단 도지사 취임 단계에서는 몇 발짝 뒤진 셈이다. 선거라는 단기 승부가 아닌 도정이라는 3년짜리 승부에서도 최문순 지사의 ‘역전 유전자’가 작동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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