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이종격투기 시합이 금지된 프랑스 출신으로 이종격투기계에서 이름이 높은 제롬 르 반 선수(왼쪽).
한국에서는 요즘 권투보다 이종격투기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최요삼 선수 사망 사건으로 권투가 잠깐 주목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이종격투기인 듯하다. 최홍만 선수가 표도르 등 유명한 이종격투기 선수와 대결하는 시합은 생중계되며 시청률도 높다. 전세계에서 이종격투기 열풍이 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종격투기 중계를 볼 수 없다. 정부에서 이종격투기 경기 중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개봉돼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영화 〈13구역〉은 두 주인공의 화려한 몸놀림과 액션이 볼거리이다. 프랑스에서는 권투를 비롯해 무에타이와 비슷한 프랑스식 복싱(일명 사바테:Savate)·유도·태권도 등 여러 나라 무술이 성행한다. 대학 클럽이나 시청 강좌 형태로 도장이 운영된다. 하지만 공식으로 프랑스 안에서 이종격투기 시합을 벌이는 것은 불법이다.

물론 개인이 이종격투기를 배우는 것을 막는 제도는 없다. 유도 도장 등에서 이종격투기를 가르치기는 한다. 그리고 외국에서 프랑스인이 시합에 출전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제롬 르 반·시릴 아비디와 같은 프랑스 출신 이종격투기 선수가 이름을 날린다.

프랑스에서 이종격투기는 영어 표현대로 복합무술(MMA:Mixed Martial Arts), 혹은 프리 파이트(Free Fight)로 부르거나 프랑스어로 자유 격투(le Combat Libre)라고 한다. 이종격투기는 1990년대 말부터 몇몇 무술 도장을 통해 프랑스에 소개되었다. 이종격투기에 대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자 2005년에는 케이블 채널인  유로스포츠와 위성 채널인 멀티비전에서 외국 이종격투기 시합을 방송하기도 했다.

“프랑스인 8000여 명이 이종격투기 배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는 이종격투기 확산에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2005년 2월7일 카날 플뤼에서 방영되었던 시사 다큐 〈월요 추적〉에서는 ‘새로운 검투사들’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이종격투기의 인기와 그 위험성을 보도했다. 방송에서는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가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해 챔피언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들은 이종격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종격투기가 합법 스포츠로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법망을 피해 시합이 벌어지고 있으며, 선수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나 의료진 없이 싸운다고 보도했다.

이종격투기가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운동이라는 비판이 일자 프랑스 방송위원회인 CSA는 2006년 1월8일 이종격투기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방송을 금지했다. 공식 금지 조처를 했지만 이종격투기가 계속 관심을 모으자 불법 이종격투기 시합을 소재로 한 〈스콜피옹(Scorpion)〉이라는 영화가 2007년 2월에 개봉됐다. 이 영화의 감독 쥘리앙 세리는 지난해 11월29일 한 스포츠 포털 사이트 인터뷰에서 이종격투기는 싸움 기술이 아니라 많은 무술의 장점을 종합한 우수한 운동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유도나 권투 따위 다른 무술 단체가 수련생을 빼앗길까 봐 이종격투기 합법화를 막는다고 주장했다.

ⓒFlickr프랑스는 개인이 이종격투기를 배우는 것은 허용한다. 위는 격투기를 하는 프랑스 사람들.
이종격투기가 높은 인기를 끄는 현실을 감안해 이종격투기를 양성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들은 이종격투기를 합법화해 규칙을 정비하고 선수 보호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이종격투기 애호가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이종격투기가 위험한 운동이 아님을 적극 홍보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종격투기를 함께 가르치는 무술 도장 운영자인데, 선수들은 오랜 훈련을 통해 기술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므로 관객이 보는 것처럼 위험한 운동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애호가들은 2006년까지 공식 권투 시합에서 1326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 1993년 미국에서 UFC가 처음 개최된 이후 이종격투기 공식 경기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며 이종격투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시사 주간지 〈엑스프레스〉 2006년 2월16일자는 ‘공식 통계는 없지만, 약 8000명이 이종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종격투기의 인기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사에서 케이블 채널인 스포츠 플러스(Sport+)의 장 폴 마이에 기자는 상대를 바닥에 메어치는 것같이 위험한 기술을 제거해 안전성을 높이고 선수에 대한 의료 조처를 의무화하는 등 스포츠로 제도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고 밝혔다.

그러나 이종격투기에 대한 프랑스인의 거부감을 완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텔레비전 및 영화 관련 잡지인 〈텔레시네옵스〉의 2006년 9월23일자 칼럼에서 작가인 도미니크 타리드는 정부가 금하는데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청소년이 이종격투기를 접한다며 이 ‘저질스러운’ 이종격투기가 챔피언을 만들기보다는 거리의 건달을 양성한다고 비난했다.

“폭력을 오락으로 즐기는 문화를 경멸한다”

프랑스 사회가 이종격투기를 금기시하는 것은 단지 이종격투기가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며 반인권적인 스포츠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마치 고대 로마의 검투사처럼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폭력을 오락으로 즐기는 문화를 경멸하는 것이다. WWF와 같은 프로 레슬링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미국 문화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일간지 르 몽드의 2006년 5월25일자 기사에서 당시 ‘청소년 및 체육부 장관’ 장 프랑수아 라무르는 “스포츠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력과 야만 행위는 인권을 중시해야 할 문명사회의 가치를 훼손한다”라며 이종격투기를 금지한 이유를 밝혔다. 장 프랑수아 장관은 “이종격투기가 관객에게 심한 정신적 위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경기자의 생명에 위험 요소가 많다”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가 강조점을 둔 것은 이종격투기 선수의 신체 위험성보다는 이종격투기를 둘러싼 정신의 위험성이었다. 프랑스 지식인 가운데에는 이종격투기뿐만 아니라 프로 권투 같은 격투기 스포츠를 같은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이 흔하다.

한국에서는 최근 최요삼 선수의 사망을 계기로 프로 권투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프로 격투기 스포츠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시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 사회의 꼿꼿함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과연 옳은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기자명 파리=표광민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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