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이르는 말이다. 엘 클라시코가 세계 최고의 축구 경기로 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보통 유럽 축구에서의 라이벌전은 정치·사회·문화 등 주요 요소가 대립된 구성원들 간의 ‘전쟁터’로 이해된다. 하지만 엘 클라시코는 다른 라이벌전에서 느낄 수 없는 한이 있다. 그것도 오랫동안 묵혀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내전으로 기억될 스페인 내전을 통해 한 세기 동안 카스티야·카탈루냐 민중의 대표자 노릇을 했다. 그들에게는 총칼이 아니라 축구공이 쥐여졌다. 두 팀은 축구공을 통해 서로에게 패배감을 안겨줄 수 있기에 최고 팀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AP Photo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의 공격수 메시(가운데)가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 알바로 아르벨로아(오른쪽) 등을 피해 골문을 향하고 있다.
라이벌 감정의 불씨는 1920년부터 타올랐다. 당시 미겔 프리모 데리베라 장군은 스페인의 독재자로, 민족주의가 꽃을 피우던 카탈루냐를 탄압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족쇄를 채웠다. 스페인 국가에 야유를 한 바르셀로나 관중의 행동을 빌미로 경기장을 3개월 동안 폐쇄했고, 창립자 감페르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뒤에는 그 수위가 더욱 격해졌다. 바르셀로나의 수뇰 회장은 내전 중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클럽의 이름과 문양도 강제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내전을 일으키고 국가원수에 오른 프랑코 총통은 레알 마드리드의 열렬한 팬이었다. 하지만 그의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사랑은 1950년대 최고 선수 알프레도 디스테파노(85)의 영입에서 알 수 있듯이 도가 지나쳤다. 1953년 아르헨티나 출신 디스테파노가 남미 리그를 평정하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그의 영입에 뛰어들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는 소속 클럽과 디스테파노의 영입을 합의했다. 하지만 스페인 축구연맹은 디스테파노의 바르셀로나 행을 ‘모호한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고, 그와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가 그의 영입에 끼어들었다.

이 와중에 스페인 축구연맹은 갑작스럽게 외국인 선수 영입 제한 조항을 발효하겠다고 선언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협상의 빈틈을 노려 바르셀로나보다 더 높은 몸값을 부른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바르셀로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결국, 이 싸움은 양 팀이 2년 동안 번갈아 디스테파노를 소유한다는 기이한 결론으로 끝났다. 이 같은 스페인 축구연맹의 결정 뒤에는 프랑코 총통의 입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Reuter=Newsis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디스테파노(왼쪽)와 바르셀로나의 전설 크루이프.
바르셀로나에게는 축구연맹의 제안이 굴욕이었다. 팬들은 분노했고 마지못해 협상을 수용한 회장은 곧 사임했다. 결국, 디스테파노를 얻은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챔피언스리그 5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리그와 컵대회를 합하면 이들이 거둔 우승 경력이 열다섯 번이나 된다. 레알 마드리드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20세기 최고의 팀’이라고 공인받은 이유는 디스테파노를 중심으로 한 ‘저승사자 군단’이 이루어놓은 챔피언스리그의 위대한 업적 덕이다. 1953∼1964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216골(282경기)을 넣고, 두 차례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지낸 디스테파노는 현재 이 팀의 명예회장으로, 팀의 어른으로 칭송받고 있다.

바르셀로나에도 디스테파노에 비견될 만한 어른이 있다. ‘토털 축구’의 선봉장 요한 크루이프(64)이다. 크루이프도 영입 과정에서 디스테파노 못지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스페인 축구연맹의 외국인 선수 영입 제한의 덫에 걸려서 협상 자체가 백지화될 뻔했다.

1982~83년 시즌 5연전, 바르셀로나가 압승

네덜란드 출신의 크루이프는 1960년대 부진에 빠져 있던 바르셀로나에 새로운 빛이었다. 이적 후 첫 시즌인 1973∼1974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5대0으로 대파하며 14년 만에 리그 우승을 팀에 안겨주었다. 크루이프는 선수보다 감독으로서 바르셀로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1988∼1989시즌 바르셀로나 감독이 된 그는 ‘드림팀’으로 불리는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팀을 만들었다. 이때 과르디올라 현 바르셀로나 감독을 필두로 호마리우·하지·스토이치코프·쾨만 등 당대의 재능이 뭉쳤다. 크루이프가 해낸 가장 큰 쾌거는 1992년 여름 웸블리에서 일군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이었고, 이 밖에도 우승 트로피 8개를 손에 넣었다.

프랑코 총통 사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스페인에서 지역 갈등은 어느 정도 봉합되었다. 최근에는 스페인 대표팀이 2008 유럽선수권대회, 2010 남아공월드컵을 연이어 제패하면서 전국적으로 화합의 물결이 일어나기도 했다.

ⓒReuter=Newsis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왼쪽)과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 감독(오른쪽)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웃을까.
하지만 시대가 지나도 엘 클라시코의 격렬함은 변함이 없다. 특히 두 팀에 2010∼2011시즌은 특별하다. 한 시즌에 다섯 차례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중 네 번이 4월17일∼5월4일에 집중되어 있어서 축구 팬들을 열광케 한다. 지난해 11월 리그 경기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에 0대5로 완패했다. 4월17일 리그 경기에서는 두 팀이 1대1 무승부를 기록했고, 4월21일 열린 코파 델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전에서는 호날두의 결승골로 레알 마드리드가 신승을 거두었다. 4월28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 1차전 경기에서는 '메시 골'로 바르셀로나가 2대0으로 이겼다. 두 팀은 오는 5월4일 4강전 2차전에서 또다시 맞붙는다.

한 시즌에 두 팀이 다섯 번 맞붙은 기록은 1982∼1983시즌 때뿐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리그 2경기, 리그컵 결승 2경기, FA컵 결승에서 4승1무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엘 클라시코 5연전은 그때보다 무게감이 더하다. 오늘날의 챔피언스리그는 대회 권위나 팀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 면에서 30여 년 전 리그컵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엘 클라시코가 1대1 무승부로 끝난 날 크루이프는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만 하지, 좋은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그는 친정 팀 바르셀로나의 철학은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항상 말해왔다.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축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이 현재의 바르셀로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 감독 취임 후 유소년 선수 육성에 온 힘을 쏟았는데, 그의 노력은 2000년대 이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메시·푸욜·사비·이니에스타 등, 현재 세계 최고 선수로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들이 한 세대에 별처럼 떠올랐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지만, 바르셀로나에 대한 열정은 토종 카탈루냐인 이상이다. 그는 바르셀로나 입단 이후에는 돈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에 가지 않았다며 아들 이름을 카탈루냐식으로 지었다. 그리고 2009년 이후에는 카탈루냐 대표팀을 맡아 13년 만에 감독 생활을 재개했다. 반면, 모국의 친정 팀 아약스와는 연이은 불화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지난해 크루이프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 당시 모국 축구를 평가절하했다. 그는 “네덜란드는 승리를 위해 거칠고 지저분한 경기를 했다. 나는 스페인의 축구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역습 중심의 거친 축구로 스페인을 상대했는데,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차이

반면 스페인에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선발 명단에 대거 포진해 있었고 ‘티키-타카’(스페인 말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 그만큼 빠른 패스를 이어가며 상대를 질식시키는 전술)라 불리는 그들의 스타일은 바르셀로나 축구와 흡사하다.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역사적 관계를 생각하면 다소 아이로니컬하지만 그의 축구 철학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그렇다면 이번 엘 클라시코에 대한 디스테파노의 생각은 어떨까? 놀랍게도 그의 반응은 크루이프와 그리 다르지 않다. 디스테파노는 “바르셀로나 축구는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보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개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디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유소년 구장도 그의 이름을 본떠서 만들었을 정도로 팀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난처해진 사람은 무리뉴 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다. 일단 그는 “디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일군 인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곳에서 아직 이룬 것이 없다”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나다”라는 소신만은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무리뉴 감독의 소신은 올곧기로 유명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인터 밀란 등 유럽 명문 팀에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향한 팀 내외의 압력에 적극 맞대응했다. 그는 엘 클라시코에서도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무리뉴 감독은 지난 시즌 인터 밀란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와 만났다. 당시 인터 밀란은 철저한 수비 중심의 전술로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틀어막았고 결국 트레블(한 시즌에 3개 대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때도 크루이프는 무리뉴 감독의 축구를 ‘안티 풋볼’이라며 힐난했다. 하지만 축구의 역사는 크루이프의 발언이 아니라 무리뉴 감독의 업적을 기록할 것이다.

또다시 무리뉴 감독은 1년 전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는 과연 바르셀로나를 꺾고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가 라이벌을 꺾고 유럽 축구 역사상 최강 팀으로 기록될까? 마지막 엘 클라시코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기자명 이남훈 (축구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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