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남편이 전직 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되려는 힐러리 클린턴.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버드 법대를 나와 연방 상원까지 오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5선 경력에 대권 재수에 나선 존 매케인. 전직 주지사 출신으로 모르몬교 신자인 미트 롬니. 침례교 목사를 오래 하다 뒤늦게 정계에 입문해 아칸소 주지사를 지낸 마이크 허커비.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현재 미국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구는 공화·민주 양당의 핵심 후보 면면을 보면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유권자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많다. 특히 지난 11월3일 열린 아이오와 당원대회에 이어 8일 뉴햄프셔 주에서 치러진 예비선거 결과를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현재의 경선은 역동적이며 이변의 연속이다.

부시의 불행은 오바마의 행운

우선 이번 경선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권자 대다수가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실정과 경제 실책으로 지난 8년간 시달려온 나머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 첫 수혜자는 놀랍게도 아이오와 주 당원대회에서 대승을 거둔 오바마였다. 그의 승리는 공화·민주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갈망해온 20~30대 무당파(無黨派) 유권자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오바마의 또 다른 강점은 변화를 적극 강조해 신참 투표권자를 적극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뉴햄프셔 예비선거에 참가한 최초 투표자 가운데 20%가 그를 찍었다. 반면 자신의 국정 ‘경륜’을 강조하며 1위를 장담하던 힐러리는 존 에드워즈 후보에게도 뒤진 3위로 추락해 큰 충격을 주었다.

공화당 측에서는 1위를 점쳐오던 롬니 후보가 침례교 목사 출신의 허커비 후보에게 패했다. 롬니에 비해 넉넉한 자금도, 노련한 정치 경륜도 부족한 허커비가 승리한 것은 이번 선거판이 돈과 책략이 난무하던 종전의 구태 정치판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흑인 오바마와 침례교 목사 출신 허커비의 승리를 ‘두 개의 정치적 지진’으로 기술했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도 이변은 이어졌다. 선거 전 모든 여론조사는 오바마가 너끈히 힐러리를 꺾을 것으로 조사됐지만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어본 결과 힐러리(39%)가 오바마(36%)를 이겼다. 비록 3% 포인트 차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민주당 유권자만을 상대로 한 예비선거라는 점에서 힐러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낭보였다. 실제로 출구 조사를 보면 등록된 민주당 유권자 중 45%가 힐러리를, 그리고 34%가 오바마를 찍었다. 그의 남편 빌 클린턴도 1992년 아이오와에서 패하고 뉴햄프셔에서 설욕한 뒤 그 여세를 몰아 민주당 대선 후보권을 따낸 전력이 있다.

공화당에서는 유력 후보군 바깥에 머물던 매케인이 허커비를 물리치고 선두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아이오와·뉴햄프셔 두 곳에 모든 자금과 선거 조직을 집중해 기선을 제압하려던 롬니 후보는 두 곳에서 다 패해 유력 후보군에서 빠질 위기에 처했다.

현재 최대 관심은 이러한 이변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 하는 점인데, 정치 분석가들은 예측 불허의 치열한 경선이 2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우선 1월 중에만 15일 미시간 주 예비선거를 시작으로  19일 네바다 주 당원대회,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예비선거, 그리고 29일 플로리다 주 예비선거 등 4개의 경선이 남아 있다.

우선 미시간 주에서는 힐러리의 압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오바마와 에드워즈는 아예 경선을 포기했다. 미시간보다는 네바다 주 당원대회가 관심을 더 끈다. 여기서도 최근까지 힐러리가 여론조사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네바다 주의 강력한 정치 세력인 요식업  노조가 오바마를 지지하고 나서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미시간 주 출신의 롬니가 설욕을 벼르지만 형세는 그리 녹록지 않다. 이곳에서는 선거 초반 가장 유력한 주자였다가 요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루돌프 줄리아니 후보가 우세하지만 매케인은 뉴햄프셔 주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기겠다는 기세다.

왼쪽부터 존 매케인 상원의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공화·민주 양당 후보가 가장 총력을 기울이는 곳은 미시간도 네바다도 아닌  남부 공화당 아성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다. 선거인단 7명이 걸려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총유권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흑인이어서 오바마가 내심 큰 기대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지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오바마가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에서는 침례교 목사 출신인 허카비가 단연 우위를 보이고 있고, 그 뒤를 매케인이 바짝 추격 중이다.

그러나 역시 최대 관심사는 2월5일 뉴욕·캘리포니아를 비롯해 22개 주에서 동시에 예비선거가 열리는 ‘슈퍼 화요일’에 쏠려 있다. 슈퍼 화요일을 기해 사실상 대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월5일 슈퍼 화요일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예측 불허’다. 종전에는 뉴햄프셔 주의 승자가 통상 슈퍼 화요일의 승자로 자리매김해왔지만, 적어도 올해 대선 판세는 그렇게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최대 선거인단이 걸린 캘리포니아 주(55명)와 뉴욕 주(31명)만 해도 힐러리의 우세지로 꼽혔지만 풍부한 선거자금과 조직력를 거느린 오바마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그는 “이번 후보 지명전은 슈퍼 화요일까지 계속될 치열한 접전이 될 것이다”라며 클린턴과의 대회전을 다짐했다.

힐러리 대세론이 주춤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경우 22개 가운데 상당수 주에서 치러지는 예비선거에 등록 당원만 참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클린턴에게 다소 유리한 상황이다. 또한 민주당 여성 유권자가 오바마보다 클린턴을 좋아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요인이다. 여기에 여전히 민주당원에게 인기가 대단한 남편 빌 클린턴도 힐러리에게는 더없는 원군이다. 공화당에서는 매케인의 선전이 기대되지만 뉴욕 시장을 지낸 줄리아니 후보가 아이오와·뉴햄프셔의 참패를 만회하겠다고 벼르고, 막대한 선거자금을 확보한 롬니 후보도 슈퍼 화요일 당일 이 자금을 모두 풀어 승부를 걸 태세여서 만만치 않다.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불과 최근까지도 공화당 어느 후보와 맞붙어도 이길 것으로 조사됐던 힐러리는 지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힐러리보다 오바마가 더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월5일 22개 주에서 동시에 실시되는 ‘슈퍼 화요일’ 당일 최종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바로 이런 복잡한 변수 때문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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