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2일 화요일. 평일 낮인데도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의 지상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가득했다. 언뜻 보기에도 ‘나 홀로 쇼핑객’보다는 가족 단위로 오거나, 여럿이 함께 온 쇼핑객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한가한 편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떠밀려 다닌다”라고 말했다. 3월18일에 개장했는데, 보름 동안 방문객 수가 60만명을 넘어섰다.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을 개점한 유통업체는 신세계첼시. 신세계첼시는 신세계와 미국의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이 각각 50% 지분을 소유한 합작법인이다. 2007년 6월에 문을 연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에 이어 두 번째로 파주 아웃렛을 개점했다. 입점한 국내·외 유명 브랜드는 165개. 신세계첼시 측은 연간 300만명에서 최대 400만명까지 파주점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교외형 아웃렛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중심으로 입점 업체를 구성하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다.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 고객과 가족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통일전망대, 영어마을, 헤이리 예술인마을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해외 관광객, 가족 단위 쇼핑객을 모은다는 구상이다.

ⓒ조우혜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3월18일 개장한 이래 보름 동안 방문객 수가 60만명을 넘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아웃렛 사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신세계첼시가 여주·파주에 이어 부산에 세 번째 아웃렛을 준비하고 있고, 롯데도 김해점·광주점·대구점 등 네 군데 아웃렛을 열었다. 현대백화점도 수도권에 프리미엄 아웃렛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거대 유통업체 처지에서 아웃렛 사업은 매력적인 신업태이다. 업계에서는 백화점이나 할인점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것으로 분석한다. 도심에 쇼핑 공간이 들어설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해외 고가 브랜드(명품)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도 확연하다. 게다가 아웃렛은 개점할 때 드는 비용이 백화점을 새로 개점할 때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적다고 한다. 앞서 개점한 아웃렛들의 매출 신장률 등 성적표도 괜찮은 편이다.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판단에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 등 ‘빅3’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웃렛 시장에 진출하고 나선 것이다.

아웃렛 시장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치열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중·소 아웃렛 상인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에서 14㎞가량 떨어진 고양시 덕이동 패션 아웃렛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210여 개 브랜드점이 들어선 ‘아웃렛 스트리트’이다. 10여 년 전부터 가게들이 모이면서 상권을 형성했다.

ⓒ조우혜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3월18일 개장한 이래 보름 동안 방문객 수가 60만명을 넘었다.
덕이동 패션 아웃렛 상인들은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이 생기면서 “25~40% 매출이 감소했다”라고 주장한다. 이용일 상인연합회 감사는 “10년 넘게 이곳에서 닦아온 상권이다. 그런데 이제 대기업 아웃렛과 경쟁을 하라니. 주차장 등 시설에 차이가 있는데 그게 경쟁이 되나”라고 말했다. 덕이동 패션아웃렛연합회는 파주·김포의 아웃렛 등과 연대해 지난해 5월 중소기업청에 사업을 조정해줄 것을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그동안 신세계첼시와 다섯 차례 ‘자율 조정 협상’을 했으나 결렬되었다. 상인들의 요구는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과 겹치는 브랜드의 숫자를 10∼20개 정도로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상인들이 ‘동일 브랜드 숫자’에 민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웃렛은 이월된 재고 상품을 브랜드 업체로부터 받아 판매하기 때문에 재고 상품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 한곳에 재고 물건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다른 곳에는 그만큼 적게 물건이 들어가는 ‘제로섬’ 관계이다. 이용일 감사는 “현재 덕이동 아웃렛과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38개 브랜드가 겹친다. 올해 연말 롯데의 파주 아웃렛까지 들어온다니 걱정이 더 크다. 지금 추세로 대기업들이 아웃렛 시장에 진입하면 우리에게 들어올 물건이 없어지게 된다. 당장 매출 감소도 문제이지만, 나중에는 물건이 아예 안 들어올까봐 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 측 “업종 달라 사업 조정 대상 아니다”

중소 상인의 요구에 대해 신세계첼시 측은 “사업 조정 대상은 같은 업종이어야 한다. 중소 상인들은 의류 도소매업으로 되어 있고, 신세계첼시는 부동산 임대업으로 되어 있어서 업종 자체가 다르다. 현재 중소기업청에 사업 조정 대상이 되는지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첼시는 사업자 등록상 업태에 의류 도·소매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둘 다 표기했다가 상인들의 조정 신청 이후 의류 도·소매업을 삭제하고 부동산 임대업으로만 등록해놓은 상태이다. 신세계첼시 측은 또 아웃렛 공급 물량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브랜드 업체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으로 브랜드의 재고 문제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3월14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점일을 미루라고 신세계첼시에 권고했다. 신세계첼시는 동종 업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소기업청은 대기업 아웃렛이 실질적으로 중소 아웃렛 매출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강제 조정을 할 방침이다. 강제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행명령 기간 3개월을 거쳐 고발할 예정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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