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2004년 2월 캐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자 동성 부부들이 결혼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시청 앞에 장사진을 쳤다.
민주당에서는 다문화의 상징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에서는 목사 출신으로 무섭게 떠오른 마이크 허커비가 돌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미국 민주당은 지난 2004년 대선의 딜레마에 다시 한번 빠질 듯하다. 바로 동성 결혼 문제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공화당의 오판을 지적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2004년  2월 민주당원인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동성 부부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심 이슈가 이라크 전쟁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로 바뀐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사건 이전까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는 동성 결혼에 관한 한 견해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시와 케리 양쪽 다 동성 간 시민 결합(civil union)은 허용하되 동성 결혼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시의 동성 결혼 허용을 계기로 부시 대통령은 결혼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규정하며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반면 케리는 시민 결합만을 허용하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 수도, 동성 결혼을 전면 지지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동성애 단체는 부시 대통령의 견해에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니 이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종교적 이유로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화당으로 표심을 돌렸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세력이면서 점점 미국 내 발언권이 높아가는 히스패닉의 이탈이 뚜렷했다. 이들의 종교 기반이 가톨릭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43세의 주의원이 존 케리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딱 한 구절에서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면서, 동성애자 친구(gay friend)라는 말을 쓴다. 이 의원의 연설 구절마다 열광적인 환호성을 지르던 청중은 그가 이 말을 쓰자 다소 머뭇거리는 듯한, 조금 작아진 환호성을 보낸다. 그가 바로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 동성 결혼 놓고 '줄타기'

기독교 교단들은 동성애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다. ①동성 간의 육체적 결합을 가지는 자를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가 ②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하는가 ③동성애 커플을 축복하는가 ④동성 결혼을 지지하는가 네 가지 단계에 따라 그 보수성을 가늠할 수 있다. 보통 미국의 보수적인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교회에 오는 것을 막지 않지만, 동성애 성향은 극복할 것을 권고하며 동성 간의 육체적 결합을 반대한다. 오바마가 속한 연합 그리스도 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교단으로, 동성애자를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며, 지역 교회에 따라 동성애자를 성직자로도 인정한다. 반면 공화당 허커비가 목사로 일하는 남침례교단(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은 동성 간의 육체적 결합을 죄로 규정한다.

ⓒAP Photo오바마는 지금까지 동성의 시민 결합은 찬성하되 동성 결혼에는 반대해왔다. 위는 동성 부부.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도 동성애자 이슈를 피할 수 없다. 롬니의 두 주요 지지 기반이 이 문제를 두고 서로 상충된 견해를 보이기 때문이다. 롬니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출신이면서 독실한 모르몬 교도다. 따라서 매사추세츠가 주요 지지 기반 중 하나다. 매사추세츠는 동성애자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미국 내에서 몇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이며, 동성애자가 많이 사는 3대 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이 있는 주이기도 하다. 롬니의 또 다른 지지 기반인 모르몬교는 동성애에 매우 부정적이다.

버락 오바마는 이제까지 시민 결합은 찬성하고 동성 결혼에는 반대하는 견해를 보여왔다. 얼핏 보기에는 이것은 샌프란시스코 시의 동성 결혼 합법화 사건 이전의 존 케리나 조지 부시가 보였던 견해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오바마는 “크리스찬으로서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라며 그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Audacity for hope)〉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는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각 주가 동성 결혼의 합법성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면, 시민 결합을 지지한다”라고 밝힌다. 시민 결합을 기본으로 하면서 주마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할 수 있게끔 한다는 이 견해는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논쟁의 도화선이 될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 점이 바로 지난 대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법과 연방법 사이의 조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주마다 각각 동성 결혼의 합법성을 결정하게 된다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연방헌법 4조(Full faith and credit clause)에 따르면 각각의 주는 각각의 주 헌법을 가지며, 그 안에서 자유권을 갖지만, 다른 주의 헌법과 조율해야 한다. 만일 한 주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데 다른 주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연방헌법 4조에 나와 있는 주 헌법 상호존중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 둘째, 1996년 민주당 출신 대통령 빌 클린턴이 사인한 혼인보호법(DOMA: The Defense of Marriage Act)과 어긋난다. 이 법에 따르면, 결혼과 배우자라는 용어는 동성 간의 결합에 쓸 수 없다.

또한 혼인보호법에 따르면, 한 주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할지라도 다른 주는 그 효력을 거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매사추세츠에서 결혼한 동성 부부가 뉴욕 주로 이주해서 돈을 벌 경우, 뉴욕 주는 매사추세츠의 권한을 부인하고 이 부부를 미혼으로 간주해 주세를 거둘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세금은 연방에서 거두는 몫이 상당하다. 만일 매사추세츠에 거주하는 동성 부부는 ‘결혼’이라고 해서 세금 혜택을 주고, 뉴욕 주에 거주하는 동성 부부는 ‘시민 결합’이라고 해서 세금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주에 따른 세금 차별 시비가 붙을 수 있다.

오바마의 민주당 내 대선 후보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시민 결합을 지지하고,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입조심하는 모양새다. 그만큼 이것이 미국 대선에서 미묘한 문제인 셈이다. 만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오바마가 동성 결혼 문제에 동성애자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히스패닉 표와 더불어 흑인 표 상당 부분을 잃어버릴 수 있다. 흑인 중에는 남침례교단에 속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이미 종교가 주요 화제로 떠오른 이상, 대선 주자들이 동성 결혼 문제를 두고 어떤 스펙트럼에 서는가에 따라 그들이 확보할 수 있는 표도 갈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인디애나 / 이민아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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