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욘사마’를 사모하는 일본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남이섬 알지? 이 섬의 이름은 조선 예종 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남이 장군의 이름을 딴 거야. 남이의 묘지가 그 섬에 있다는 전설이 있긴 한데 진짜 같지는 않구나. 어쨌든 남이는 역모를 꾸몄다고 고발돼 예종 앞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능지처참되고 말았지. 그런데 그 와중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어. 처음에는 자신의 혐의를 필사적으로 부인하던 남이였지만 매 앞에 장사가 없어서 자신의 죄상을 순순히 밝히는데 그 와중에 한 명을 향해 손가락 총을 쏜다. “저 사람도 나와 함께 역모했소이다.”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전 영의정이자 무관으로서 남이의 대선배라 할 강순이었어.

강순은 “제가 나이 여든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역모를 하겠습니까”라고 부르짖었지만 역모 앞에서는 용서가 없었지. 그는 꼼짝 못하고 형틀에 얽어매여 볼기를 까게 돼. 그 늙은 엉덩이와 허벅지에 인정사정없는 곤장질이 가해졌지. 그런데 몇 대 맞기도 전에 강순은 허무하게 항복하고 말아. “신이 어려서부터 곤장을 맞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뉴스타파 제공영화 〈자백〉의 한 장면. 최승호 감독(왼쪽)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오른쪽).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매도 맞아본 사람이 강한 법이야. 팔십평생 회초리도 제대로 맞은 기억이 없을 이 늙은 고위 관리는 곤장 몇 대에 혼이 나가버렸던 거야. 자기 몸이 토막 나서 죽는 건 당연하고 그 자식들까지도 연좌되고 집안의 여자들은 죄다 노비로 떨어지는 그런 어마어마한 자백을 강순은 매 몇 대와 바꾸고 만단다. 일단 자백을 한 이상 번복은 허용되지 않았고 강순은 그대로 역적으로 떨어졌지. 이제 남은 것은 남이가 강순을 불었듯 또다시 강순을 족쳐서 다른 역적들의 이름을 고구마 캐듯 캐내야 하는 일이었어. 예종 임금은 독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지. “또 누구와 역모를 꾸몄느냐. 똑바로 대라.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이 말을 들은 강순은 다급하게 외친단다.

“신이 어찌 매질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좌우의 신하를 다 불러서 제 패거리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예종은 움찔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식이라면 매 한 대에 사람 이름 서너 개씩은 주워섬길 판이라, 자칫하면 거기 도열해 있던 신하들 전부가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으니까. 예종은 고문을 중지한다. 강순의 이 경고는 고문의 잔인한 특성 하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즉 고문이란 어떤 사안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한 절차라는 거.

해를 달이라 부르게 만드는 고문

언젠가 만민공동회(1898년) 얘기를 해준 적이 있지? 아관파천이 끝나고 대한제국이 성립한 뒤, 외국의 이권 침탈에 저항하고 자주독립의 의기를 드높인 서울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이자 오늘날 촛불 시위의 원조라 할 역사적인 사건. 그런데 이 만민공동회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문과 관련된 일이었단다.  

ⓒ국사편찬위원회만민공동회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는 고문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종 황제는 커피를 매우 즐겼다고 해. 그런데 이익을 챙기다가 들통이 나서 흑산도까지 귀양갔던 김홍륙이라는 자가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황태자가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넣어 고종 부자를 독살하려는 사건이 일어났어. 고종은 곧 뱉어냈지만 황태자는 많은 양을 들이켜는 바람에 후유증이 컸지. 왕을 독살하려 한 진짜 역적인 셈이야. 예전 같으면 당장 주리를 틀고 일당을 캐낸 뒤 사지를 찢어 죽이고 가족을 노비로 삼았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어. 4년 전의 갑오개혁으로 고문과 연좌제, 즉 죄인의 가족들을 함께 처벌하는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 김홍륙 사건을 계기로 연좌제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김홍륙 일당이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던 거야. 〈독립신문〉 기사를 볼까?      

“풍설에 들으니 죄인들을 악형으로 취조하여 사지를 상한 사람이 있다 하니 개화하려는 나라에서 어찌 이러한 야만의 법률을 쓸 수 있는가. 설혹 악형에 못 이겨 횡설수설로 거짓말을 한다면 애매한 사람만 상하고 임금의 호생하시는 성의를 어기는 것이요 설혹 진실을 말하더라도 잔혹한 형벌에 못 이겨서 하는 말을 개화한 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다. 만일 풍설과 같이 악형으로 취조했으면 각국 사람들이 대한 정부를 야만 정부라 할 터이니 이처럼 국체를 손상할 일을 우리 정부에서 행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김정인 지음, 책과함께 펴냄).”

비록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만민공동회의 열기를 뜨겁게 지펴 올린 장작 가운데에는 ‘고문 금지’와 ‘연좌제 부활 반대’의 목소리가 선연히 끼어 있었단다. 그들도 알고 있었지. “잔혹한 형벌에 못 이겨서 하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자백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그 후로도 120년 동안 이어져왔음을 슬프게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얼마 전 함께 본 영화 〈자백〉은 그 명백한 증거이고 말이야.

매질이란, 고문이란 그런 거야. 해를 달이라고 부르게 만들 수도 있고, 아빠가 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름과 행각을 마치 그린 듯이 줄줄 읊도록 할 수도 있지. 영화 〈자백〉 속 불쌍한 간첩 용의자들 역시 국가권력에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강요받았어. 꼭 주리를 틀고 매를 때리는 것 외에도 고문은 많단다. 때를 알 수 없는 감금, 사기까지 감행하며 사람을 옭아맬 증거를 조작하는 국가의 압박, 가족을 틀어쥐고 들이미는 협박, 그 모두가 사람 잡는 고문이지. 원하는 대답을 강요하여 누구든 그 앞에서 무장해제돼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까지 뒤집어쓰게 만드는 짐승 같은 야만. 오빠를 간첩으로 고발하도록 몰고 도무지 견디다 못해 스스로 귀한 목숨 끊게 만드는 파렴치.  

영화 〈자백〉을 함께 보면서 아빠는 가끔 몸 둘 바를 몰라 어깨를 뒤척이곤 했단다. 특히 후일 무죄로 판명 난 그 많은 간첩 사건들의 장구한 스크롤을 보면서는 네게 미안해지기까지 하더구나. 아빠가 널 낳아 기르는 이 나라가 부끄럽고 그 역사가 수치스러워서 말이다.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인간 이하의 고문으로 조국에 공부하러 온 재일동포(재일 한국인) 청년의 몸과 마음이 부서졌다. 그 후 내내 폐인처럼 살았던 그가 수십 년 만에 꺼낸 한국말,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는 날선 창처럼 느껴져 아빠 가슴을 찌르더구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한 사람을 잔인하게 망가뜨린 자들이 ‘나는 모르는 일이노라’ 잡아떼면서 던지는 미소는 굵은 소금이 되어 가슴의 상처 속을 헤집었고 말이야.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뒤 아빠는 꿈을 꾸었다. 통쾌한 악몽이라고나 할까. 꿈속에서 아빠는 악마가 됐어. 김기춘이나 원세훈 등 고문을 지휘하고 자백을 짜낸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고문하는 역할이었지. 꿈속에서 아빠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밟고 주리를 틀었어. 그들은 곧 강순처럼 항복하더구나. “제가 맞은 적이 없어서… 저 간첩 맞아요 엉엉.” 한 번 더 몽둥이를 드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왕초로 한 북한 간첩단 조직도를 순식간에 그리지 않겠니. 아빠는 꿈속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단다. “너희도 이럴 줄 알았잖아. 똑같은 사람인 걸 알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니, 응?” 아빠는 울고 있었다.  영화 〈자백〉 속 주인공이 되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법정에서 항의하던 바로 그 간첩 용의자가 되어서 말이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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