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인 민수(가명)는 이른바 ‘남성성’이 강한 아이다. 움직임이 크고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다. ‘교실 밖’에서는 놀랄 만큼 적극적이지만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다. 토론과 공동작업 중심의 모둠별 협력학습이 특히 힘들다. 민수 생각에 선생님들은 여자아이만 좋아한다. 남자만 혼난다는 피해의식이 가득하다. 핀잔과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여자아이에 대한 불만도 깊다. 열은 받지만 말로는 당할 재간이 없으니 욱하다가 된통 당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이런 ‘남자아이’는 넘치고 교사들은 지쳐간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다 수시로 다툼을 유발하니 남자아이들을 제지하고 꾸중하느라 수업 진행 자체가 어렵다. 지적과 꾸중 빈도에 대한 남녀 비율을 물었더니 대부분의 교사가 8:2 내지 9:1이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느끼는 남녀 학생의 특징은 한마디로 ‘손댈 것 없는 여자아이와 손볼 것 넘치는 남자아이’로 요약된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매사에 느리고 충동적인 남자아이 키우기가 힘들다. 담임교사의 전화번호만 떠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아들 둔 죄인’의 마음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

ⓒ박해성 그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대다수 십대 남자아이들의 삶은 버겁다. 격차가 큰 인지와 정서 발달, 뇌 구조와 호르몬의 차이를 감안할 때, 현행 학교와 수업의 형식은 남성성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청각이 발달한 여자아이들은 묻고 답하는 정적인 학습에 강하지만, 시각 우선인 남자아이들은 직접 만지고 탐색하는 활동을 좋아한다. 무엇에 빠지면 말을 ‘안 듣는’게 아니라 ‘안 들리는’ 경우도 많다. 끊임없이 신체적 발산을 원하는 남자아이들에게 ‘복도에서 뛰거나 장난치지 말아야 하는’ 공간 배치와 규칙, 일과표는 이들을 더욱 열등하거나 제멋대로인 아이들로 보이게 한다.

성장 과정에서 실패와 자존감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여성에 대한 열등감을 깊이 각인한다. 단층 건물로 야외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쉬는 시간에는 의무적으로 밖에서 뛰어놀게 하는 외국의 유소년 교육환경과는 사뭇 다르다.

‘알파걸’로 상징되는 여성의 약진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수능 전 영역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렀고, 각종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여자아이들의 학습 태도와 능력이 우수하고, 수행평가와 수시 입학 전형에서 남학생을 압도한다. 여자아이들에게 주눅 든 십대의 남자아이들은, 2015년 대한민국 ‘성 격차 지수’가 145개국 중 115위라거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기회 평등 정도를 수치화한 ‘유리천장 지수’가 OECD 최하위인 대표적 성차별 국가라는 통계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 세계는 여전히 남성 지배 사회다. 성별 임금 격차는 36.6%로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대부분 영역에서 남성의 권력과 영향력이 우위에 있다.

‘차이와 다름’의 시각에서 학교를 돌아보자

이런 남성 기득권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우월한 능력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열등감을 자극하는 ‘여자아이’와 ‘여성’은 불편하거나 못마땅한 존재이다. 더욱이 성장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주입받은 ‘사내’ 담론은 공격성을 남성적 기질로 정당화하고, ‘남자는 한 방’ 또는 ‘실력보다 처세’라는 낡은 통념은 허세를 정당화한다. 이는 곧 ‘녀’ 등 온갖 종류의 여성 비하와 혐오 표현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파괴적으로 드러내는 일부 남성의 시선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잉태한다. 여성혐오의 씨앗은 이런 데서 싹이 튼다.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며 낯선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사건이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으로 읽히면서 거대한 분노 결집 ‘현상’을 만들고 있다. 성차별과 성혐오 의식을 차단하는 공존과 평등의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남녀 간 발달 단계와 특성에 대한 교육은 아이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필수적이다. 몸을 쓰지 못하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교육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스포츠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학교의 공간 구성과 배치, 학교 규칙과 일과표, 수업방식도 ‘차이와 다름’을 고려해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 속에는 원인과 해법에 대한 구체성이 담겨야 한다.

기자명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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