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은 정말 너무 많았다. 일이 끝나면 적당히 흘려보내야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여 떠나지 않는다. 홍기탁과 박준호라는 사람이 그랬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12일 새벽 4시30분, 서울에너지공사 목동열병합발전소 내 75m 굴뚝 위로 올라간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노동자다. “방송이 끝났는데도 이렇게만 다루고 지나가자니 마음이 계속 찜찜하더라고요. ‘하필’ 방송사랑 농성하시는 곳이 가까운 데 있어서. 노조 문화제 하는 날 가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하고 갔다가 그만(웃음).”
홍기탁씨와 박준호씨의 목소리는 김다은 PD를 라디오 부스 밖으로 끄집어냈다. 김 PD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어떤 ‘위엄’을 느꼈다고 했다. 불쌍하거나 안타깝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이내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밤이면 다음 날 일기예보를 찾아보고, 눈을 뜨면 웬일로 제대로 맞은 일기예보를 원망했다. ‘대체 왜 비가 오는 거야’ ‘오늘 미세먼지가 심한데 마스크는 쓰고 계실까’ 같은. 그러다가 굴뚝과 땅을 이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두 사람을 땅 위에서 보고 싶어졌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김 PD가 참여하는 공부 모임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혁명의 계절’. 문화공간 ‘숨도’의 단골손님 몇몇이 의기투합해 꾸린 모임이다. 그중 한 명인 정소은씨는 공연 기획자다. 각종 미인대회 참가자들처럼 정씨도 ‘세계 평화’가 꿈이다. 그 자기소개를 처음 들었을 때 김 PD는 정씨가 미인대회 참가자라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정작 정씨는 “저도 미인대회 참가자들처럼 미용실 원장님들이랑 친하다고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혁명의 계절’은 공부 모임이지만 책을 읽고 토론하기보다는 몸으로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한다.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각자의 현장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이었다. 계기는 여럿이었지만, 댓글 하나이기도 했다. 정소은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를테면 SNS에서 동물 학대나 유기견 문제가 화제가 될 때가 있잖아요. 댓글을 보면 ‘정부는 뭐 하냐’ ‘동물권 단체는 뭐 하고 있냐’ 이런 댓글 일색이에요. 저는 그게 좀 충격이었어요. 문제를 인지한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모두들 ‘소비자’로만 자신을 위치시킨단 말이에요.”
왜 저 높은 곳에 스스로를 가뒀을까
그날도 여느 날처럼 모임이 있었다. 김 PD는 막연한 마음으로 ‘굴뚝’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마음에만 있던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온 순간 툭 터진 눈물에 당황한 건 김 PD만이 아니었다. 정씨는 놀리듯 말했다. “속으로 너무 이상했어요. 아니, 이 친구가 이렇게 눈물 많은 캐릭터가 아닌데. 무엇이 저 사람의 마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제 안에 물음표가 갑자기 딱, 하고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날, ‘그래 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뭐가 되든지 해보자’라고 두 사람은 다짐하게 된다.
75m는 참 막막한 높이였다. 그 위에 머무르는 두 사람에게 허락된 공간의 폭은 80㎝에 불과했다. 정씨는 ‘친구 따라’ 그들이 올라가 있는 목동에 오긴 왔는데 막연했다. 평소 노동문제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온 탓일까. 궁금한 게 많았다. 이를테면 귓전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왜 저 높은 곳에 스스로를 가뒀을까. 굴뚝에 올라가지 않은 나머지 조합원 3인이 돌아가며 하는 1인 시위를 지켜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이분들이 농성을 오래 해서 그런지 말씀하시는 게 되게 철학자 같아요. 그런데 그게 제가 그 어떤 책에서도 읽지 못했던 살아 있는 말인 거죠. 제 안에도 노동자,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요? 왜 ‘너 공부 못하면 공장 간다’ 이런 말 아무렇지 않게들 하잖아요.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할 때 ‘노동자풍’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이분들을 만나면서 그런 편견들이 다 깨졌어요. 이 싸움의 결론이 어떻게 되든, 이분들은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간절했죠. 제가 여기서 느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분들을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
파인텍 노동자들은 이미 세계 최장 고공 농성이라는 슬픈 기록을 가지고 있다. 파인텍의 전신인 스타케미칼 굴뚝 위에서 차광호 당시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408일을 보냈다. 차씨의 고공 농성 뒤 노사는 새로운 법인 설립과 고용·노동조합·단체협약 3승계 합의서를 작성했다. 파인텍이라는 새로운 법인이 설립됐다. 하지만 그밖의 합의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파인텍 노동자들이 두 차례 공장 폐쇄를 겪으면서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오는 동안 230명이었던 동료는 다섯 명으로 줄어들었다. 노사는 양보 안을 들고 18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결렬됐고, 회사는 끝내 공장의 기계를 모두 철수시켰다. 이들이 다시 돌아갈 곳이라곤 굴뚝뿐이었다. 그 굴뚝 위에서 벌써 229일째다(6월28일 기준).
김다은 PD와 정소은씨는 봄부터 여름까지, 두 계절이 무심히 지나가는 동안 이 문제를 끌어안고 여러 사람을 만나 아이디어를 구했다. 그러던 중 극작가 이양구씨로부터 ‘손편지’라는 단어를 낚아챘다. 누군가는 굴뚝 위의 사람들을 어리석고, 비현실적이고, 무모하다고 할지 모른다. 손편지도 비슷하다. 느리고, 애를 써야 하고, 까다롭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는 상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 75m 위로 올릴 수 있다면, 당신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다는 걸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나오자 주변의 도움도 답지했다. 독일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 송민선씨가 굴뚝 모양의 편지지를 아침·점심·저녁 모두 다르게 디자인해 보내왔다. 사진작가 신기철씨가 ‘굿즈’ 사진을 촬영하겠다고 나섰다. 공희공방에서는 편지를 모을 우체통을 제작해주기로 했다. 우체통은 서울 시내 두세 곳에 두고 파인텍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는 소식지를 비치하는 게시판 구실도 겸할 예정이다. 김 PD와 정씨는 이 모든 일의 ‘배달부’가 되기로 했다. 두 사람은 6월23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손편지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tumblbug.com/chimney)’ 펀딩을 시작했다.
홍기탁·박준호씨에게 안부를 물어주세요
펀딩 기간 중에도 편지를 보낼 수 있는지, 있다면 주소를 알려달라는 후원자의 쪽지를 받기도 했다. 정씨는 그 순간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군복에 수놓는 아씨들처럼 한가하게 보이진 않을까 좀 걱정했어요. 그런데 이렇게라도 이 이슈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앉혀두고,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 아닐까요. 중요한 건 펀딩 성공보다, 실제 편지가 얼마나 모일지인 것 같아요. 걱정되고 또 한편 기대돼요.”
굴뚝 농성 200일이 넘어가면서 그동안 정말이지 안 해본 것 없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에너지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김 PD는 지금이야말로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느낀다. “이분들 모여 있는 텔레그램 방을 보면 파업을 정말 열심히 하세요. 파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널널하겠구나 생각하잖아요. 근데 시간을 정말 철저하게 쪼개서 ‘업무’처럼 하시거든요? 보고 있으면 아, 이분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일하시겠구나 싶달까(웃음). 저는 이 싸움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 회사 측도 지금처럼 노동자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땅과 굴뚝을 잇는 한 통, 한 통의 편지는 굴뚝 위 두 노동자가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될 수 있을까. ‘홍기탁씨, 박준호씨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는 안부를 가만히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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