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한 국가의 ‘기억의 총량’이라고 한다. 외교 영역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현재 새롭게 보이는 어떤 정책이나 제안도 과거 누군가 시도했던 정책이나 책략일 수 있다. 외교 강국일수록 그런 책략들을 축적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게 한다.

5월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회동(사진)이야말로 북·미 양국이 축적해온 책략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까지의 외교적 대회전을 구상하며 상당 부분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책략을 구사해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이 구사해온 대북 관여정책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새롭게 적용 가능한 정책을 뽑아 제시했다. 5월9일 회동 이후 폼페이오 장관의 입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북한 부흥계획에 ‘기억의 총량’이 담겨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먼저 김정은 위원장부터 살펴보자. 4·27 남북 정상회담 전후 김정은 위원장은, 2000년 5월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통해 선보인 ‘미·중 경쟁구도 활용 전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3월25~28일 1차 방중은 패턴까지도 김정일 위원장의 2000년 5월 방중 행보를 그대로 따랐다. 즉,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전격 방문해 대규모 경협을 요구하는 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5월7~8일 다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 회담을 했다. 그는 1차 방중 뒤인 3월31일~4월1일 북한을 방문한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와 비밀리에 접촉해 중국의 의구심을 키웠다. 그리고 바로 2차 방중해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만일 미국의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신 보상하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약속을 끌어내기도 했다.

2000년 5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 방중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당시 한국 사회는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인프라 구축과 관련한 ‘북한판 마셜플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국내 대북 사업가가 베이징에서 접촉한 북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측과 담판할 비장의 카드를 들고 방중 길에 올랐다. 북·미 간 이면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철도·도로 등 북한 주요 인프라 구축 사업 권한을 미국 기업에 넘겨달라며 다국적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북측에 들이밀었다고 한다. 북측은 답변을 미룬 채 김 위원장이 방중 길에 이것을 들고 가 중국과 담판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혈맹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북한 인프라 구축 사업권을 미국에 넘길 수밖에 없다’는 압박 카드인 셈이다. 북한이 미국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우려한 중국은 지원을 약속한 데 이어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위원장은 3월과 5월, 두 차례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회담을 했다.

 


이때도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를 활용해 크게 판을 벌여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었다. 한국 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보다 미국 기업의 하청업체로 참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미국의 24개 인프라 구축 사업 관련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 진출 준비를 했다. 이들은 북한 당국과 교섭해 사업권을 따내고 한국 기업에 하청을 줄 계획이었다고 한다. 노동력은 북한이나 중국이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서 핵심은 북한이 자신들의 인프라 문제를 미·중 간 대결구도를 이용해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 발상이 최근 김정은 위원장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당시 중국을 자극할 요소가 미국 다국적기업의 사업계획서였다면 이번에는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 미군의 존치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5일 남한 측 특사단과 만나 “예년 수준으로 (한·미 연합훈련)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라며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후 대규모 대북 경협 카드로 환심을 사서라도 이 발언을 철회시키려고 북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5월16일 한·미 공군의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비난하며 북한이 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한 배경에는 대(對)중국 메시지 관리 측면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미국대로 몸이 달았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차 방북해 5월9일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것도 미·중 경쟁구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5월7~8일 다롄에서 있었던 시진핑 주석의 대북 경협 약속에 김정은 위원장이 흔들릴까 봐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부흥계획을 가지고 방북했다. 미·중 대립구도를 이용해 큰 판을 벌인다는 북한의 책략이 적중한 셈이다. 방북 뒤 북한 경제 번영을 돕겠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 내용을 분석해보면 북한 부흥계획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경우 한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번영할 수 있도록 미국이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1960~1970년대 한국의 부흥을 이끈 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점,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하면 그 노하우를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뉘앙스다. 이 발언은 북한 부흥계획의 총론에 해당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5월13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일단 미국인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를 풀어 민간자본이 북한에 흘러들어 가게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전력망 확충과 인프라 건설 그리고 농업 발전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제재 완화는 물론이고 더 많은 것도 할 수 있으며, 북한 사람들도 고기를 먹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미국의 농업 능력을 포함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협력하겠다고 했다.

 

 

 

 

ⓒAP Photo4월18일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왼쪽)가 공식 만찬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각론에 해당하는 이 발언을 이제 하나씩 따져보자. 미국인의 세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 차원의 개발원조나 차관 등 공적 자금은 쓰지 않고 제재 완화를 통한 민간자본에 주로 의지하겠다는 의미다. 북한 비핵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는 완화 단계를 거쳐 폐지된다. 미국이 이 과정을 주도하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미국의 독자 제재도 풀려야 하는데, 대표적인 게 적성국교역법과 테러지원국 지정이다. 북한은 한국전쟁기인 1950년 12월 기존 적성국교역법에 신설된 외국자산 통제 규정에 따라 미국 내 자산 동결, 교역과 금융거래 금지, 미국인 여행 제한 같은 제재를 받아왔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일부 규정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이 규정이 살아 있는 한 미국 기업의 대북 투자나 금융거래가 불가능하다. 또한 국제무역 진출의 관문이라 할 대미 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최혜국 대우(MFN) 획득도 불가능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얘기한 민간자본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적성국교역법 해제가 필수다.

또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이 개발도상국에 주는 최혜국 대우나 무역 특혜, 대외 원조가 금지된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에 해당 국가가 가입하면 미국은 이사국으로서 반드시 반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성국교역법이나 테러지원국 해제는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로 가능하다. 의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 비핵화에 상응해 신속하게 해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은행에 가입하려면 절차가 까다롭다. 먼저 IMF 회원국이 되어야 하는데 ‘최대 주주’인 미국이 영향력을 발휘해 가입 속도를 빨리하더라도 가입 후 자금 융자까지 시간이 걸린다. 적성국교역법 해제로 미국 자본의 교역과 금융거래가 가능해도 미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미는 소수 자본에 국한된다. 즉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번영을 위해 제시한 부흥계획 중 인프라 건설은 미국 민간자본을 아무리 동원해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이 쳐다보는 건 ‘일본의 수교 자금’?

그렇다면 폼페이오 장관은 무엇을 믿고 큰소리를 친 걸까. 미국은 민간자본을 동원해 북한 인프라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는다. 북한과 교섭해 사업권을 획득하는 게 목적이다. 실제 자금은 남의 돈이다. 바로 일본의 수교 자금(식민지 지배 배상금)이다.

북한과 미국이 막후 협력 체제를 구축해 일본 수교 자금을 끌어들여 인프라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은 지난 2000년이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사진공동취재단2018년 4월2일 오후, 평양 시내의 풍경. 시민들이 점심시간에 거리에 나와 길을 걷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정국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측에서 대북 투자단을 결성해 방북을 시도하고 북한에서는 고위급 인사가 미국을 방문하는 등 북·미 양측 사이에 일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 수출입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가 의미심장한 지적을 한 바 있다. “북한과 미국이 과거 1960~1970년대 한국 경제개발의 자금줄 역할을 한 국제금융공사(IFC) 사무소를 평양에 세워 일본의 수교 자금이나 국제기구 차관의 배분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IFC는 국제개발협회(IDA)와 더불어 세계은행의 양대 산하기관 중 하나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민간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기관으로 1956년 설립됐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한국과 대등한 수준의 번영’에는 미국이 IFC 같은 기구를 통해 외국자본 배분권을 통제하며, 한국 부흥을 도왔던 패턴을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게 일본 수교 자금을 미국 통제하에 두는 일이다.

2000년에도 이 문제를 둘러싼 미·일 간 갈등이 심각했다. 당시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금융 전문가는 “미국이 수교 자금을 미국 기업에 넘기라고 일본에 압력을 넣고 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즉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배분이 일본 기업들에 편중돼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압력을 가하는데, 그 첫 케이스로 북·일 수교 자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측은 북한이 수교 협상 과정에서 전례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미사일이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없이도 미국을 통해 수교 자금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했다”라고 일본의 금융 전문가는 지적했다.

당시는 김대중 정부 아래서 한·일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북한에 진출하는 것보다 한국을 파트너로 삼아 직접 북한에 들어가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한국이 북·일 수교회담을 주선하면 북한 인프라 개발에 일본은 한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지금은 쉽지 않은 구도다. 이래저래 미국에 가장 유리한 구도인 셈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04년 12월 북한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의 기술자들이 발전기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방북을 전후해 미·일, 북·일, 북·미 관계는 2000년 당시 미국이 의도했던 것과 같은 구도이다. 우선 미· 일 관계를 보자.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미·일 간에 약 200억 달러(약 21조6000억원)로 추산되는 일본의 대북 수교 자금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8일 한국 특사단 방미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측은 아베 총리를 필두로 고노 다로 외무장관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 등이 미국을 잇달아 방문했다. 미국을 방문한 이들은 북핵뿐 아니라 생물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 배경에는 결국 돈은 일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자기들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미국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일본 요구를 수용하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재팬 패싱’을 당하지 않으려면 수교 자금을 내야 한다고 압박 중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일본 자금 없이도 미국 자본으로 충분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일본이 결국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워싱턴-평양 회담 못지않게 워싱턴-도쿄 협상 역시 치열하다”라고 전했다.

북·미 간 암묵적인 협조 움직임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북한은 연일 일본에 대해 재팬 패싱을 경고하며 비판했다. 5월9일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5월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현장에 일본 기자는 부르지 않을 방침이라고 통고했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이 이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주문했다고 한다. 북한이나 미국이나 아베 총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게 유리하다는 암묵적인 의견 일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부흥계획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전력망 구축은 화력발전소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높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2003년까지 200만㎾의 경수로 원자로로 대체하는 데 협력하도록 되어 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5년 7월26일 열린 4차 6자회담 1단계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의 약속 위반을 거론했다. 북한이 경수로 보상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 세력은 핵물질 추출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수로를 반대했기 때문에 대안은 화력발전소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9년 9월쯤 미국 국무부를 중심으로 북한의 핵동결 시 약 30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제공해 북한 전력난을 해소해주는 방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AP Photo2015년 7월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였던 시드니 사일러(왼쪽)는 폼페이오 장관의 대북 교섭 브레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2년 8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준비했다. 북한은 핵실험 비용을 마련하고자 핵무기용 고폭장치를 이란에 50억 달러에 매각하려 했다. 미국이 이를 포착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화력발전소 프로젝트가 서랍 속에서 나왔다. 2012년 8월 당시 디트러니 미국 국가정보국(DNI) 비확산센터장이 비밀리에 방북해 장성택과 접촉해 화력발전소 프로젝트 구상을 전했다. 바로 다음 달 실제로 미국 대기업과의 접촉을 주선했다. 미국의 한 기업은 당시 베이징에서 장성택의 영향권에 있었던 합영투자위원회 측과 30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 관한 MOU를 체결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동결에 합의하면, 미국 기업이 매년 5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 2기씩 3년에 걸쳐 6기 300만㎾ 규모의 발전시설을 건립해주기로 했다. 당시 북한의 연평균 전력 수요량은 700만∼780만㎾인데, 공급량은 약 400만㎾(이 중 화력발전소가 280만㎾/h, 수력발전소가 180만㎾/h)였다. 300만㎾ 전력이 제공되면 전력난에서 해방되는 셈이다. 화력발전소 입지는 북한의 석탄 지대인 북창(개천·안주·북창 등)과 순천(직동·용등·영대 등) 일대였다. 미국 측 총투자 규모는 32억3000만 달러로 이 중 30억 달러가 화력발전소 건설에 사용되고, 나머지 2억3000만 달러는 북한 전역의 주요 송전선을 개건하는 데 쓰일 계획이었다. 투자비는 태천·동창·회창 등의 금광 개발권(100t)을 제공받아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핵동결의 대가로 제안해온 ‘패키지 딜’

 

 

 

이같은 화력발전소 프로젝트와 함께 JP모건이 북한 금융시장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다. 북측과 합영은행을 설립해 국제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결제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신용장 개설이나 투자 자금의 송금 등 국제 금융업무가 불가능했다. 국제결제 시스템이 구축되면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함께 국제 금융기관과의 소통도 본격화되는 셈이다.


2013년 1월에는 미국 유수의 대기업이 북측과 접촉해 북한산 마그네사이트를 개발해 판매하는 방안을 타진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측은 세계 최대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마그네사이트를 개발하면 당장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며, 자신들이 개발자금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북한에 제안했다고 한다.

마그네사이트 개발 판매를 통한 단기 자금 확충, 화력발전소 건립을 통한 중장기적 전력난 해결, 그리고 국제결제 시스템 구축 등은 그동안 미국 측이 북한 핵동결의 대가로 제안해온 ‘패키지 딜’의 핵심 내용이었던 셈이다. 트럼프 정부가 단기간에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모를까 이미 충분히 연구가 이뤄진 방안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 같은 ‘기억의 총량’에 이번에 플러스알파가 보태졌다.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같은 대외 이미지용 기업을 앞세우고, 실제로 북한의 희토류나 석유·철광석·석탄 등의 광물 자원을 장악하기 위한 관련 대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세제 혜택을 노리며 북한 진출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농업 협력은 클린턴 정부 때 계획과 관련이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과 농업기술 협력을 시도했다가 국회에서 예산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중단된 적이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경제부흥계획은 길게는 1960~1970년대 남한 부흥계획과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당시의 북·미 접촉, 2009년 9·19 공동성명과 2012년 2·29 합의 이후 그해 4월과 8월의 북·미 비밀 접촉 등의 경험을 총망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현장에 참여했던 인물이 시드니 사일러 전 국무부 대북 특사(6자회담 차석대표)다. 그가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의 대북 교섭 브레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트위터에 “지난 3월31일~4월1일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의 방북 수행원 가운데 시드니 사일러 전 국무부 대북 특사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라고 주장했다. 시드니 사일러는 원래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무부, 국가정보국 등을 40여 년간 두루 거친 미국의 베테랑 북한 전문가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부터 북한과 ‘관여’의 현장을 모두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어 강연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에도 능통한 그는 2014년 국내 한 토론회에서 제네바 합의, 6자회담, 2012년 2·29 합의 등에 대해 “실패했다고 말하기보다 배워야 할 교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드니 사일러가 말한 교훈의 총량이 바로 트럼프 정부의 북한 부흥계획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부흥계획의 결과가 미·일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정치·경제·군사를 장악하고 일본이 일정한 위치에서 남북의 결합을 견제하는 구도야말로 미국 브레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이다. 북한은 중국을 끌어들이고 또 한편으로는 남북 공조를 강화해 이 구도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북한 개발을 둘러싼 북·미·일 각축 구도에서 균형자인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4·27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도 ‘기억의 총량’에서 실효성 있는 북한 개발 청사진을 뽑아내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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