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일씨는 1995년 배드민턴 체육특기자로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펜싱 특기자였던 고영태씨와 동기 사이였다. 그렇게 고씨와 20년 지기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인연으로 고영태씨를 통해 최순실씨와 일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다니던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최순실씨와 ‘사업’을 함께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유사한 스포츠 영재를 지원하는 사단법인을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법인의 기본 골격을 갖춰놓자마자 잘렸다.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져 ‘야인 생활’을 했다. 배드민턴 레슨을 하거나 생선 나르는 일을 한 것이다. 최순실씨의 첫 번째 ‘배신’이었다고 노씨는 회상한다.

2015년 7월 말, 최순실씨 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독일에 갈 생각이 없느냐”라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때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 2015년 8월10일 노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최순실씨의 지시로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독일에 따로 사무실이 없어서 부동산부터 알아봐야 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살 집과 마방, 호텔(비덱하우스)을 구한 이도 노승일씨였다.

그는 부동산을 알아보느라 한 달에 자동차로 2만2000㎞를 이동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요금만 40만원이 나왔다. 노씨는 코어스포츠 홈페이지와 명함을 만들었다. 그런 노씨가 코어스포츠에서 맡은 직책은 부장이었다. 하지만 월급이 짰다. 최저생활비와 실비만 받았다.
 

ⓒ시사IN 이명익노승일씨(오른쪽)는 박근혜 게이트의 ‘내부고발자’ 구실을 했다. 그는 참고인 신분으로 연일 특검에 나가 진술을 했다.

2015년 8월26일, 노씨가 독일에 도착한 지 보름여 만에 삼성전자와 코어스포츠의 계약이 성사됐다.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독일 훈련을 위해 220억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약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노승일씨는 실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당시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최순실씨에게 ‘토사구팽’을 당했다. 노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2015년) 8월27일로 기억한다. 삼성과 계약이 성사된 다음 날이다.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최순실씨가 당초 약속한 월급 350만원 중 200만원은 한국에서 줄 테니, 독일에서는 150만원만 받으라고 했다. 독일 세법이 너무 강하다는 핑계였다.” 노씨로서는 최순실씨에게 두 번째 배신을 당한 셈이다.

“근로계약서도 안 썼으니 항의할 방법이 없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자료’를 만들어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노씨가 말한 자료는 바로 이번에 폭로한 내부 문건, 이메일, 카톡 내용 등이다. 그는 치밀하게 자료를 모았고 숨겼다. 최순실씨에게 들킬까 봐, 신발 밑창에 자료를 모아놓은 SD 카드를 숨겼다. ‘위장용 USB’도 몸에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최씨 쪽이 몸을 수색하면 위장용 USB를 넘겨줄 작정이었다.

2015년 9월 말, 최순실씨는 노승일씨를 해고했다. 자신의 측근 윤영식씨(데이비드 윤)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알렸다. 노씨는 그럴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자 최순실씨는 노씨가 지내던 독일 숙소의 무선 인터넷과 난방을 끊어버렸다. 밤이 되면 벽돌로 지은 집 안에 냉기가 돌았다. 노씨는 추위를 견디다 못해 부엌에서 전기 오븐을 켜고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음식도 주지 않았다. 차도 다시 가져가버렸다. 돈도 없었다.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씨는 냉장고에 있던 곰팡이 핀 마늘장아찌 따위를 씻어서 먹어야 했다. 노씨의 회상이다.
 

ⓒ노승일 제공2015년 10월 당시, 노승일씨(오른쪽)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해고당한 뒤 국수 가락을 간장에 비벼 먹었다. 노씨는 “그렇게 자료를 모으며 버텼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독일에 함께 있던 최순실씨의 측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먹을 것이 없다고 호소하자, 쌀 한 포대를 갖다 주었다. 그런데 쌀만 가지고 어떻게 먹나. 집을 뒤져보니 간장이 나오더라. 간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일주일 먹었더니 구역질이 나더라. 집을 뒤져보니 오래된 소면이 나왔다. 또 며칠간은 국수 가락을 간장에 비벼 먹었다. 그렇게 살면서 자료를 모으며 버텼다.”

노승일씨가 귀국을 거부하자, 최순실씨는 아예 그가 자는 사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버렸다. 마방 겸 사무실이던 예거호프 목장에는 노씨만 남았다. 2015년 11월 말 어쩔 수 없이 노승일씨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신발 밑창에는 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모았던 자료가 담긴 SD 카드가 있었다.

귀국 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굶주린 탓인지 한 끼에 밥 3~4그릇씩 몰아서 먹는 폭식 부작용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노승일씨에게 지난해 1월 고영태씨가 연락을 했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의 뜻을 모아서 체육재단을 만드는 데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노씨는 “당시에는 최순실씨와 연관된 곳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이것도 ‘최순실판’이었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씨는 사람을 자를 땐 냉혹했으면서도, 노씨가 일을 잘하자 K스포츠재단에 채용되는 걸 용인했다.

내부 고발 후에 뒤따른 ‘보복성’ 조치

노씨는 K스포츠재단 입사 후 곧바로 그동안 모은 자료를 폭로하리라 결심했다. 은밀하게 지인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임기가 많이 남았는데, 폭로해도 덮일 것이다”라는 만류가 강했다. 그는 때를 기다렸다. 때가 의외로 빨리 왔다.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노씨도 검찰 특별수사본부 소환조사를 받았다.

물론 검찰에 자료를 건네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이때도 노씨는 검찰조차 믿을 수 없었다.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노승일씨는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했다. 담당 검사에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검사가 반문했다. “대한민국 검사가 크게 한 건 하고 그만두면 명예롭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노승일씨의 마음을 붙잡았다. 노승일씨는 갖고 있던 모든 자료를 검찰에 제공했다.

이후 노승일씨는 박근혜 게이트의 ‘내부고발자’ 구실을 톡톡히 했다. 2015년 8월26일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를 통해 정유라씨 지원을 계약했던 시기에 작성된 문서, 최순실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세상에 공개했다. 최순실씨가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내용의 전화 음성 녹음,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만든 국정조사 청문회 대비 문건 등을 검찰과 국회에 제보했다. 검찰에 낸 자료는 박영수 특검으로 넘어갔다. 그는 최근 참고인 신분으로 연일 특검에 나가 진술을 했다.

노승일씨는 지난해 12월15일 국정조사 제4차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순실씨가 쓰던 노트북에서 복사해온 청와대 연설문이 있다. 제가 쓰던 컴퓨터를 최순실씨가 잠시 사용하면서 복사하게 된 청와대 문건도 있다”라고 말했다(〈시사IN〉 제486호 ‘독일에서도 청와대 문건 받아봤나?’ 기사 참조). 여당 의원들이 JTBC가 보도한 태블릿 PC의 증거능력을 의심하자 다른 증거가 많다는 취지로 한 말이다.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이 “(최순실의) 동의를 안 받고 남의 컴퓨터에서 복사해가도 되는가? 범죄행위다”라고 지적하자, “처벌받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노승일씨는 〈시사IN〉과 한 인터뷰에서 “검찰에 자료를 건네고 청문회에서 폭로하는 순간 모든 것을 각오했다. 목숨을 걸고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내부 고발의 대가는 컸다. 당장 ‘보복성’ 조치가 이어졌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앞장섰다. 1월5일 이사회 안건으로 노승일 부장 징계 건을 발의했다. 내부 문건을 유출해 취업규칙을 어겼다는 것이 이유다. 〈시사IN〉이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K스포츠재단 징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동춘 이사장은 “노승일은 최순실과 관련해 사전에 내부 고발을 준비해온 사람이다. 재단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적극적으로 중징계를 주장했지만, 이사진 가운데 강경파는 정 이사장뿐이었다.

이사회 결과 경징계인 ‘경고’가 결정되자, 정 이사장은 이번에는 조건을 달자는 주장을 펼쳤다. 다음에 또 징계위에 회부되면 ‘해고’한다는 조항도 같이 넣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이사진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는 ‘국회에서 증인·감정인·참고인으로 조사받은 자는 이 법에서 정한 처벌을 받는 외에 그 증언·감정·진술로 인하여 어떠한 불이익한 처분도 받지 아니한다(제9조 3항)’라고 규정되어 있다. 1월11일 K스포츠재단 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동춘 이사장 연임을 반대하고 노승일씨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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