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다. 모든 상처 입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그중에는 예술가들도 있다. 지리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자신만의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많다. 이 예술가들은 교류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어디서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어디서 무언가 창조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 예술가들이 스스로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에 뭔가 구경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구경거리는 바로 ‘지리산 프로젝트(jirisan project.net)’다. 전북 남원 실상사, 경남 산청 성심원, 경남 하동 삼화에코하우스 등에서 아티스트들이 지리산을 모티브로 예술 작업을 해서 선보이자, 지리산의 예술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6월20일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옆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지리산 프로젝트 월례모임(이하 지프달모)’에는 남원의 종이인형 작가 소빈씨, 평사갤러리를 운영하는 귀농 화가 이승현씨, 하동의 그림책 작가 오치근씨 등이 막걸리와 부침개를 들고 모여서 이야기판을 벌였다. 지리산이 ‘은거’의 공간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시사IN 고재열김지연·최윤정·김준기(왼쪽부터) 큐레이터는 ‘지리산 모티브’로 예술 작업을 선보이는 판을 펼쳤다.

지리산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작가 16명이 실상사에서 전시를 했고 성심원에서는 작가 20명이 전시를 했다. 해외 작가도 참여했는데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몇 명은 실상사와 성심원에 입주해서 장시간 지리산을 관찰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지리산을 인문지리적으로 읽어냈다. 지리산 산수화를 그리는 이호신 화백 등 지역 작가도 참여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다. 올해는 지역 작가의 비중이 더 커지리라 예상된다.

첩첩산중에 지리산 프로젝트라는 넉넉한 예술판을 펼친 큐레이터 세 사람이 있다. 김준기 전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지연 전 창원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 최윤정 전 대구미술관 큐레이터가 그들이다(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와 이영준 김해문화재단 전시교육팀장도 지리산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돈도 되지 않고 거리가 멀어서 오는 사람도 적지만 이들은 지리산을 예술로 채색하는 데 열심이다. 주류 무대에서 조명받는 전시를 할 수 있는 실력과 이력을 지녔지만 이들은 지리산에 무한 애정을 쏟는다.

종교와 지역 초월한 지리산의 영성을 탐구하다

지난해 ‘우주·예술·집’이라는 주제로 지리산의 의미를 풀어냈던 이들은 올해는 ‘우주 산책’을 주제로 매달 지리산 이곳저곳을 걷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낸 사단법인 숲길은 실상사·성심원과 더불어 지리산 프로젝트의 든든한 후원자다. 산책 뒤에는 꼭 ‘공부’를 한다. 6월20일에는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지리산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함’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지프달모의 하이라이트는 예술 퍼포먼스다.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화에코하우스에서 입주 작업을 했던 강영민 작가가 김지연 큐레이터와 ‘예술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막걸리를 곁들인 예술 수다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지리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김준기씨는 “올해도 여름부터 작가들의 작업이 본격 시작되고 가을에 큰 전시를 열어 그 결과물을 소개할 계획이다. 올해는 특히 종교와 지역을 초월하게 해주는 지리산의 영성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재미있는 판을 만들어보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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